영화 〈바람의 파이터(2004)〉에는 최배달이 일본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48~1645)의 『오륜서』를 들고 기요스미산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가 나온다. 최배달이 이때 보여 준 몸의 이야기는 그를 전설이 되게 한 여정이었다.
1945,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모든 것을 잃었다. 산업의 기반은 물론이고 먹는 것조차 넉넉지 않았다. 인심은 흉흉했고 모두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날을 세우고 살던 때였다. 무엇보다도 패전으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은 일본인들의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특히 패전국을 통제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의 횡포가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미군은 왜곡된 권력으로 점령지 일본 여인들을 무자비하게 겁탈하고 희롱했다.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자국의 여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희롱하는 미군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리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무기력했고 의지도 없었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일본 사내들을 뒤로하고, 최배달은 단신으로 여인들을 겁탈하는 미군들과 싸웠다. 밤마다 미군들을 박살 내고 여인들을 구하는 얼굴 없는 그에게 사람들은 일본의 막부 시대 영웅인 ‘구라마텐구(鞍馬天狗)’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의 의협심이 명성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를 잡으려는 미국 CID(범죄수사국)의 추적도 심해졌다. 그 즈음 최배달은 도피 도중 아사히 신문에 인기리에 연재 중이던 인기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감명 깊게 읽고 그를 찾아간다.
작가는 세칭 ‘구라마텐구’가 최배달인 걸 알고 놀라워하면서 몸도 피할 겸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자기완성을 위한 고투에 임하기를 자연스럽게 권한다. 최배달은 작가의 안목 있는 제언을 받아들인다. 최배달의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작가 또한 누군가의 아내이자 딸일 수 있는 여인들이 백주대낮에 미군에게 겁탈당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서 돕지 못하는 일본 남자들의 실상을 보았다. 그리고 식민지였던 자국의 여인들이 겁탈당하고 능욕당했던 사내가 오히려 적국의 여인들을 구한 역설적인 스토리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소설 속 미야모토 무사시의 자기 완성은 어쩌면 그런 최배달의 은혜에 보답하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선물은 아니었을까?
최배달의 기요스미로의 입산은 지독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18개월 동안 양쪽 눈썹을 번갈아 가며 밀며 고독한 사투를 견뎌 낸다. 두 손가락만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나무를 정권이나 발로 차 부러뜨렸다. 대련 상대가 없어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참나무와 얼음 덩어리, 심지어는 개울가의 차돌까지 수의 상대였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산 정상까지 왕복 2시간을 오르내리고, 오전에는 기초 체력 단련, 오후에는 실전 훈련. 미친 듯이 고함 지르고 나무를 치고 차는 기합 소리에 ‘기요스미산의 도깨비’란 별명도 그 즈음 생겼다. 극한의 육체적 수련은 침묵하는 몸의 아우성으로 완성되었다.
이후 전 일본 가라테 대회에서 우승. 전 일본을 돌며 수많은 고수들과의 실전 대인 ‘도죠야부리’, 즉 도장 깨기를 시작한다. 교토 송도관의 원류 니조 도장의 니조 십걸을 가볍게 격파하고, 자신의 공개 처형을 선언한 일본 내 고수들과 30 대 1의 무사시노 혈전까지. 적어도 일본에서 그를 넘어선 자는 없었다. 일본을 완전히 제패한 후 전 세계로 나가 무술 고수 100명과의 대결에서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전 세계 무도계까지 평정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맨손으로 황소와 대결해 소뿔을 꺾는 등 믿기 힘든 신화 같은 일화들을 남겼다. 정직한 몸이 남긴 기록들이다.
최배달의 이러한 전설 같은 기록의 완성에 힘의 논리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배달이 남긴 위대한 어록 중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이것이다.
‘무도의 궁극은 사랑이다.’
정신적 수련의 궁극을 맛보지 않은 무도인들은 도달 할 수 없는 무(武)의 절대 경지다. 생사를 넘나드는 최강의 파이터로 평생을 살아온 최배달의 어록이라 더 절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