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을 맞으며
시골집 마당에 심은 농작물들
대파·달래·토마토·오이·열무 등
이른 여름날씨에 활짝 꽃 피워
뒤뜰 감나무에 노란 감꽃
캄파눌라·수레국화도 눈길

올해도 매우 더울 듯하다. 일기 예보도 일찍부터 더울 것이라 한다.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벌써 한여름 날씨를 보였다. 대구·경북의 20일 날씨는 32도에서 35도의 날씨를 보였다. 지난주도 더웠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아니라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날씨 속에 초목은 더욱 무성해지고, 그 가운데 다채로운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5월 하순에도 시골집 앞마당과 뒷마당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어났다. 초봄과는 다른 점은 농작물 꽃들이 많다는 점이다. 감자가 한창 자라고 있는데, 흰 꽃들이 초록 잎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꽃술은 노란 색이어서 흰 꽃잎과 뚜렷하게 대비가 된다. 흰색 감자는 흰 꽃을, 자주색 감자는 자주색 꽃을 피운다. 대파와 달래도 탐스런 꽃을 피워냈다. 달래는 지난해 봄까지는 많이 보이지 않아 몇 뿌리를 캐어 곳곳에 옮겨 심었는데, 그 씨앗이 떨어져 번지면서 올해는 지천으로 많아졌다. 보랏빛의 예쁜 꽃을 보는 즐거움이 의외다.
올해부터는 중국 요리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고수도 많이 불어나 메밀꽃처럼 흰 꽃이 무수히 피어났고, 일찍 핀 것은 이미 열매가 풍성하다. 고수와 방아 등 향이 강한 것을 좋아해 지난해부터 곳곳에 심었는데, 고수는 씨가 주위에 떨어져 발아하면서 저절로 잘 번식하는 것 같다. 방아도 다년생인데,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그리고 모종을 심은 토마토와 오이는 노란 꽃을 피우며 작은 열매도 함께 맺어 잘 키워가고 있다. 뒤뜰의 감나무도 노란 감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지금은 대부분 열매를 맺었다. 감꽃을 보니 어린 시절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거나 풀줄기에 끼우며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초봄에 씨를 뿌린 열무 중 뽑아 먹지 않는 것들이 꽃대를 내밀어 소박한 흰 꽃을 피우고 있다. 작은 잔디밭 한곳에 심어놓은 클로버에서도 흰 꽃이 피고 지곤 했고, 뒤뜰 한 구석에 심은 초롱꽃도 초롱을 닮은 타원형의 흰 꽃을 피워 기분을 좋게 하고 있다.
◇농작물 꽃
올해 처음으로 보라색 꽃을 피우며 눈길을 각별히 끌고 있는 것들도 있다. 캄파눌라와 수레국화가 주인공이다. 캄파눌라는 대구 어느 길가에 겨울인데도 작고 푸른 잎이 무더기로 있는 것이 보여 몇 포기 뽑아와 심었던 것이 잘 살아나 작고 예쁜 보라색 꽃을 5월 내내 피워냈다. 나중에 알아보니 캄파눌라였는데 지금도 피어나고 있다. 수레국화는 몰랐던 꽃인데, 마당 곳곳에 저절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한 포기만 남기고 다 뽑아버렸다. 혹시 꽃인가 싶었는데, 지난달 19일부터 첫 꽃송이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 후 연이어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이 꽃은 이웃 사람이 골목 가에 심은 것인데, 씨가 날아와 싹을 틔운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올해 처음 씨를 뿌려본 강낭콩(흑강)도 텃밭 가에서 잘 자라 지난달 21일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연 보랏빛 꽃인데, 모습도 예쁘다. 같은 시기에 돌나물(돈나물)도 별 표시 모양의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크기는 작지만, 토마토 꽃과 모양이 비슷하다. 무리를 지어 자라는 돌나물이어서 꽃도 무더기로 피어 노란 꽃다발을 보는 듯하다. 연초록 잎 속에 옅은 노란색 꽃을 피워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씁쓸한 맛과 강한 향기를 느끼며 맛있게 먹었던 당귀도 꽃대를 길게 내밀더니 고수 꽃처럼, 그보다 더 자잘한 흰 꽃을 지난주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이들에 이어 고추도 흰 꽃봉오리를 맺으며 차례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흰 색과 보라색 꽃을 피우던 제비꽃과 더불어 가장 흔하게 보는 꽃이 씀바귀 꽃인데, 다 져버린 제비꽃과는 달리 씀바귀 꽃은 지금도 곳곳에서 여전히 피고지고를 계속하고 있다, 홀로 피어도 좋고 무더기로 피어있어도 보기 좋은 노란 꽃이지만, 너무 흔해 잡초 대접을 받는 씀바귀다. 개망초는 집 밖을 나서면 요즘 한창 흰 꽃을 피우고 있는 식물이지만, 집 안에서는 뽑기가 좋은 것이어서 꽃을 피우기 전에 보이는 대로 뽑아 버렸다. 끊임없이 새로 올라오고 있는 잡초이자 나물이다.
돌담 위에는 오래 전부터 보아왔던 인동초가 희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향기가 좋은 꽃이다. 인동초는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호박이 줄기를 본격적으로 뻗기 시작하면 호박 줄기와 어우러져 돌담을 뒤덮을 것이다.
모든 초목이 무성히 자라는 시기
잡초 제거에 많은 노동력 필요
나날이 커가는 꽃들 보는 즐거움
노동의 수고로움을 잊게 해줘
참으로 고마운 존재임을 깨달아
◇각별히 정이 가는 해당화
집을 나가 동네 골목으로 나서면 더 다채로운 꽃밭이 곳곳에 펼쳐진다. 장미와 꽃양귀비, 해당화, 수레국화 등. 이웃사람들이 담장밖에 심어놓은 초목들이다. 이 중 해당화는 내가 좋아하는 꽃 중 하나다.
우리 민족의 삶의 애환이 쓰며 있는 해당화는 꽃도 예쁘다. 그래서 7~8년 전 해당화 두 포기를 구해와 심어놓았는데, 어머니가 농작물이 아니라고 뽑아버려 크게 아쉬워했던 적이 있다.
5월부터 3개월 정도 꽃이 피고 지는 해당화다. 우리나라 서해와 동해 해변의 모래언덕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면서 진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옛날부터 많은 사람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척박한 모래언덕에서도 화사하면서 순박한 아름다움과 은은한 향기를 선사하는 해당화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 온 꽃이기도 하다. 그런 정서는 우리 문화와 예술 곳곳에 녹아들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만/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이런 내용의 민요가 오래전부터 불려 왔고, 유행가에도 해당화에 당대의 정서를 담은 가사들이 많이 등장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버티며 오랫동안 자생해온 해안 모래밭 해당화 군락은 점점 사라져갔다. 특히 동해안 해변의 자생 해당화는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요즘 동해안에서 보게 되는 해당화 군락 대부분은 조경을 위해 인공적으로 심어 조성한 것들이다. 옛날부터 자생하던,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멋진 풍광을 선사하던 모래밭 해당화 군락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해안의 화진포와 월포를 비롯해 영덕, 울진, 삼척, 강릉, 속초, 고성 등의 해변을 수놓던 해당화가 백사장 난개발과 약초꾼 등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몰려야 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해당화 복원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별 성과를 못 거둔 것 같다.
해당화(海棠花)는 줄기에 가시와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며, 두껍고 타원 모양이다. 표면은 주름살이 많고 윤기가 있으며 털이 없다. 그 뒷면에는 잔털이 많다.지름 6∼9㎝ 정도의 향기로운 꽃이 5∼7월에 홍자색으로 핀다. 흰색도 있고, 연분홍색도 있다. 꽃은 계속 피고 지는데, 9~10월에 피어나는 예도 있다. 둥근 열매는 8월 이후 황적색으로 익는다. 해변의 모래밭이나 산기슭에서 주로 자라났다. 우리나라 해안 모래언덕에서 쉽게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물다.
요즘은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는 시기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때라, 더운 날씨에 농작물 밭을 잡초 없이 깨끗하게 해 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도 작물들이 나날이 커가면서 예쁜 꽃들을 피워 다양한 꽃을 보는 즐거움을 주는 덕분에 노동의 수고로움을 잊게 한다. 여름 내내 먹을거리를 내어주고, 또 탐스런 과실을 맛보게 하는 농작물들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들임을 새삼 깨닫는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자연이나 농작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과 일상의 새로움을 온전히 느끼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