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1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고, 출생 당시부터 이름을 가질 권리 및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가지며, 가능한 경우 친부모의 신원을 알 권리 및 친부모에 의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2024년 출생통보제의 도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의 정보가 지방자치단체로 통보되어, 출생신고의 누락을 예방하고 영아 살해와 아동 유기, 매매 범죄로부터 아동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서 출생신고 대상을 ‘국민’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외국인 아동에게 출생통보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출생등록은 헌법재판소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인정하는 인류 보편적 인권이다. 그러나 현행법 체계상 외국인 아동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태어난 모든 아동에 대해 출생등록을 허용하고 있으며,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위한 방안으로 ‘출생 자동등록제’ 및 ‘보편적 출생등록제’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아동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인 아동 자국의 외교공관을 통해 출생등록이 되어야 하지만 국내의 모든 외국인 아동이 이러한 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민, 무국적자, 미등록 이주민 등 자국의 외교공관을 이용할 수 없는 외국인들은 자녀의 출생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생등록이 불가하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미비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제도에서 ‘보이지 않는’ 아동들은 예방접종이나 건강검진 등 필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종되거나 학대받아도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범죄에 더욱 취약해진다.
2024년 9월 기준 임시 신생아 번호로 등록되어 있던 외국인 아동 5,183명 중 320명은 안전, 소재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아 경찰 수사가 의뢰되었고, 49명은 아동 또는 보호자의 인적 사항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부터 22대 국회까지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위한 법률들은 지속적으로 발의되었음에도,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아이가 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는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동 한 명, 한 명의 존재를 존중하는 첫걸음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을 적절하게 보호하고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우리 사회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동안 외국인 아동들은 교육권과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고 영아 매매 및 불법 입양 등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하루빨리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다.
출생신고는 태어난 아이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세상과 연결하는 의례이다. 이에 아동의 신분이 공식적으로 등록되도록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모든 아동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할 국가의 책무이다.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이 자녀가 없어도 되는 이유로 응답한 2위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였다. 아이의 고유한 존재조차 임시번호로 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아동과 가정이 제대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라도 우리 사회에서 ‘존재’조차 환영받지 못했던 아이들의 삶을 ‘존중’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차별 없이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