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식
사회 2부
“떨거지들 데리고 뭘 하겠냐”

한 코치의 이 한마디가 한 팀을 무너뜨렸다. 선수는 경기력 이전에 자존감을 잃었고 운동장보다 훈련장이 더 두려운 공간이 됐다. 문경시청 소속 실업팀 소프트테니스 여자팀에서 벌어진 ‘막말 코치’ 사태는 단순한 감정 폭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습적이고 반복적이었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월 문경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첫 경기 패배 후 A 코치는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떨거지들”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현장에선 그가 선수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이 목격됐다. 충격을 받은 선수들은 연이어 경기에 패했고 이 상황은 언론과 체육계로까지 확산됐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단발성이 아니었다. 선수들 증언에 따르면 A 코치의 막말은 평소에도 잦았다. 성적이 저조하면 비하 발언이 쏟아졌고 부상 중에도 치료 시기를 놓칠 만큼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일부 선수는 운동을 그만두거나 이적을 고려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실력보다 인내심이 더 필요한 팀 그런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경시는 뒤늦게나마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지난 9일 선수들과의 개별 면담을 통해 스포츠운영위원회를 열어 정직 1개월, 감봉 3개월이란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이 모든 절차가 시작점은 언론 보도와 외부 제보가 있은 후였다. 그 전까지 이 문제는 내부에서 방치돼 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도자 관리 체계’에 있다. 실업팀은 시 예산으로 운영되며 선수들은 문경시의 이름을 달고 전국 대회를 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의 인성, 지도방식, 선수 보호에 대한 기준과 점검은 거의 없었다. ‘성과’라는 이름 아래 폭언과 강압이 묵인되었던 셈이다.

운동은 기록이 아니라 사람이다. 실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실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정신과 존엄이 더 우선이다. 감정노동에 가까운 구시대식 훈련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실업팀은 엄연히 공공 조직이다. 지도자는 권위가 아닌 신뢰로 이끌어야 하고 선수는 두려움이 아닌 존중 속에서 땀을 흘려야 한다.

문경시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실업팀 전반에 대한 재점검을 예고했다. 지도자 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도 검토 중이다. 익명 고충 접수창구, 인성 교육, 심리상담 등 다각적 대응이 언급되고 있지만 중요한 건 지속성과 실효성이다.

‘떨거지’란 말은 팀의 능력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나온 조직의 민낯을 보여준다. 더 이상 선수들이 그 말에 자신을 투영하지 않도록 문경시는 뿌리 깊은 체육 문화의 관행을 바꾸는 데 진심이어야 한다.

신승식기자 sss112@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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