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하고 귀여운 겉모습에
농작물 피해 주범 중 하나
국내 추정 개체 수 70만 마리
사냥으로 1년에 16만 마리 죽고
로드킬은 3만 마리 내외 추정

사진
시골 밭에서 잡초 제거 작업을 하다 마주친 고라니 새끼가 홀로 배롱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 산돼지와 더불어 비교적 흔한 야생동물에 속한다. 그런데 시골 생활을 했어도 산돼지를 실물을 직접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산돼지들이 논밭이나 산소 등에 내려와 땅을 파헤친 흔적들은 쉽게 볼 수 있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현장의 주인공인 산돼지를 직접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 아래 있는 시골 밭을 수시로 오가며 산돼지들이 지렁이 등을 잡아먹거나 하기 위해 땅을 무자비하게 헤집어 놓은 현장을 자주 보게 되지만, 한 번도 산돼지 실물을 직접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밤에 주로 활동하는지,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고라니는 그렇지 않다. 밭에 일하러 가거나 농로 길을 걸을 때 고라니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도망치는 모습을 종종 접하게 된다. 고라니는 모습이 사납지 않고 온순해 보여서 보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고라니도 인기척을 느끼면 먼저 알고 바로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기는 어렵다. 귀엽고 순해 보이는 이 고라니도 농작물 피해의 주범 중 하나이다 보니, 농작물 피해를 보는 농사꾼들에게는 성가신 존재들이기는 산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며칠 전 고라니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매실 밭에서 마주쳤는데 도망가지도 않고, 심지어 만져보아도 가만히 있었다. 홀로 산보 중인 고라니 새끼를 한 마리 만나게 된 것이다. 반갑고 놀라웠다.

매실 밭의 무성해진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예초기를 메고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됐을 때다. 잡초 제거 작업에 몰두해 있는데, 바로 앞에, 2m 정도 앞에 있는 고라니 새끼 한 마리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이다. 깜짝 놀라 동작을 멈췄다. 그런데 고라니도 나를 빤히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기계소리에 놀란 것이 아닌가 싶어 예초기 작동을 멈췄다. 그래도 가지 않고 계속 그냥 서 있었다. 그래서 그 현장을 좀 떠나 다시 예초기 시동을 걸어 작업을 했다. 작업을 좀 하다 돌아보니 그 자리인 배롱나무 아래 엎드려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30분 정도 더 작업을 한 후 돌아와 보니 고라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쉬고 있었다. 고개만 조금 전과 다른 방향으로 돌린 채 엎드려 있었다. 다가가서 등을 쓰다듬어도 그냥 그대로 있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어미가 주위에 있겠지 등 걱정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낮에 고라니가 궁금하기도 해서 다시 밭으로 가보았다. 고라니는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노루와 고라니를 헷갈려 한다. 노루는 엉덩이 색깔이 흰색이고, 꼬리가 없다. 고라니는 그렇지 않고, 꼬리도 있다. 또 노루의 경우 수컷은 뿔이 있지만, 고라니는 암컷과 수컷 둘 다 뿔이 없다. 고라니 수컷은 노루와 달리 송곳니가 입 밖으로 돌출되었다. 경계심이 특히 강한 노루를 야생에서 사람이 만나기가 어렵다. 한 달 전쯤 마을 뒷산에 혼자 등산을 갔다가 멀리 인적 없는 계곡 가에 홀로 노니는 큰 노루를 본 적이 있다. 야생 노루를 본 것은 그것이 유일했던 것 같다.

국내에선 흔히 볼 수 있지만

지구촌 관점에선 희귀한 존재

세계적 멸종위기 등급 '취약'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 모색해야

◇흔하지만 멸종 위기

고라니는 한반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종에 속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고라니를 멸종위기 등급인 ‘취약’ 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고라니는 중국과 우리나라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종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 916호로 지정되었고, 정식 명칭은 ‘구월산 복작노루’라고 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의 적색 목록에서 고라니를 ‘취약’ 등급으로 분류한 것과는 별개로, 한국에서는 고라니가 지나치게 개체 수가 많고 고라니에 의한 농작물 피해 사례가 많은 탓에 유해조수로 분류했다. 그래서 시기와 구역을 지정해 사냥을 허가하고 있다. 환경부의 통계에 의하면 매년 16만 마리 이상은 포획된다고 한다.

인가 근처·물가 습지에 보금자리

한살되면 독립 위해 거처 옮겨

위협 느끼면 가만히 멈추는 습성

도로 위 치명적 결과로 이어져

우리니라 고라니는 밭의 작물을 먹성 좋게 마구 먹어치우기 때문에 농가 피해가 크다. ‘산중 벌이하여(농사지어) 고라니 좋은 일을 했다’라는 속담이 생겨났을 정도다. 고라니는 새순과 채소를 좋아한다. 상추, 고추순, 콩잎 등을 좋아하지만 들깨 잎은 먹지 않는다.

고라니는 보통 물가 습지나 갈대숲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시골에서는 집주변 갈대숲이나 풀이 우거진 곳에 살고 있다. 새끼 고라니는 1년 정도 지나면 어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려고 다른 풀숲이나 갈대숲을 찾아 나서는데, 이때 도로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로드킬(Road Kill)’을 당하기도 한다.

고라니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로드킬 피해를 입는 동물이다. 전체 로드킬 야생동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고라니가 도로 위에서 자동차 불빛을 보면 도망치기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멈춰버리는 정지 반응 때문이다. 고라니는 위협을 느낄 때 몸을 낮추고 가만히 멈춰 있는 습성이 있는데, 이 반응이 도로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도 본능적으로 멈춰 서게 되면서 로드킬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2023년 도로공사 통계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 동물 찻길 사고를 당하는 야생동물은 고라니가 85%, 멧돼지가 6%, 너구리가 5%의 순이다. 고라니가 이처럼 동물 찻길 사고를 많이 당하는 이유는 상위 포식동물의 부재로 개체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그 원인이다. 게다가 고라니는 특히 인가 근처나 고속도로 주변 낮은 야산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사고를 많이 당하는 것이다.

고라니를 먹이로 삼는 상위 포식자는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라니 이런 상위 포식자들이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런 상위포식자에 의해 개체 수 조정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인위적으로 많이 잡아도 금방 불어난다. 우리나라의 환경은 천적이 적고, 먹이가 풍부하다. 그리고 천적보다 더 위험한 서식지 파괴도 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미미하기에 고라니에게는 이상적인 조건들이 갖춰진 낙원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도심지 또한 약간의 자연은 있기 때문에 도심지에도 자주 나타난다.

고라니 관련 조사 자료를 보면 한국의 고라니 분포 비율은 2010년 이후로 1㎢당 8마리에서 늘지도 줄지도 않고 절묘하게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천적이 없다시피 한 환경에서 인위적 개체 수 조절 속에 70만 마리 가량 있는 셈이다. 만약 개체 수 조절이 없다면 지나친 번식으로 큰 사회적·생태적 비용이 지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몇 년간 개체 수 조절을 하지 않는다면 1년에 1.5배가 늘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 8년 정도면 1천만 마리가 넘게 된다. 이런 상황이어서 국가에서 1년에 개체수의 3분의 1 가량인 20만 마리 정도를 사냥 등을 통해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한국에 서식하는 고라니 추정 개체 수는 대략 70만 마리. 그리고 사냥으로 죽는 개체가 1년에 16만 마리 이상, 로드킬로 죽는 개체는 1년에 3만 마리 내외로 추정된다. 그 외에 부상, 조난, 밀렵 등으로 집계가 안 된 사망 개체를 추산하면 매년 20만 마리 정도가 죽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도 고라니가 있지만 우리와 달리 ‘심각한 위기(Critically Endangered)’ 상태이고, 개채 수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위험할 정도로 개체 수가 감소했기에 세계자연보전연맹은 한국에서도 고라니 사냥 허가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만, 이처럼 지구촌 관점에서 보면 희귀한 존재다. 세계적으로는 희귀한 존재인 고라니가 한국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