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 단풍나무 꼭대기에 메꽃이 폈다. 신기하기도 하고 예뻐서 그냥 뒀더니 메꽃이 늘어만 가고 단풍나무는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메꽃이 지고 나서 메꽃 줄기를 떼면서 뿌리째 뽑았다. 그다음 해에도 메꽃은 단풍나무를 감싸며 올라온다. 지독한 사랑 같았다.

나무와 꽃이 함께 자라는 것뿐만 아니라 나무끼리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연리목도 특이하다. 보통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합쳐져 남녀의 사랑에 빗대어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수성못 벚꽃길에도 한 그루가 있고 팔공산 학생야영장 뒷산에 서어나무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계룡산 갑사 진입로에 쌍으로 된 여러 연리목을 구경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수종의 연리목은 수종의 특성이 다른데도 융합되기에 같은 수종끼리의 연리목보다 더 신비감을 준다. 연리목은 뿌리, 가지, 줄기 등이 맞닿을 수 있지만 줄기가 맞닿은 게 많다. 연리지를 보면 상처 난 가지끼리 서도 맞닿아 양분을 공유한다. 두 그루의 생물학적인 결합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사람도 상처를 받거나 힘들 때 기댈 수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연리목처럼 서로가 더 크게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하고 오래 변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함께 사는 모습을 나타낸 작품 중에 이쾌대의 군상이 있다. 군상이라는 제목처럼 수십 명의 사람이 엉켜 뒹구는 혼돈의 모습이다. 그중에 조난의 그림은 한국전쟁 전에 그려진 그림인데 마치 한국전쟁을 미리 예언하고 그린 듯한 아비규환의 장면이다. 마치 지옥의 문이라는 로댕의 조각상을 떠오르게 한다. 지옥의 문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는 사람과 잡아당기는 사람, 그러다 추락하는 사람, 서로 다투는 모습이 지옥의 모습을 묘사했지만, 경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현재 모습인 듯하다.

지옥의 문에서 내려다보는 “생각하는 사람” 상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유독 지옥과 어울리지 않는 키스하는 장면에 눈길이 간다. 사랑에 눈이 멀어 시동생과 사랑에 빠져 죽게 된 두 남녀를 표현하였지만, 조각상 그 자체는 아름답다. 눈이 먼 사랑을 할 때는 아름답지만 그 책임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것을 까미유도 알았지만, 본인은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이 작품을 만든 로댕과 그의 제자 까미유도 한때 사랑에 눈이 멀었다. 로댕은 24살 어린 제자 까미유에게 구애를 했고 까미유는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 19세의 까미유는 진정으로 로댕을 사랑해서 작품 제작까지 함께했지만, 유부남 로댕은 원래 부인에게로 돌아가 버린다. 무일푼에다가 정신까지 망가져 정신병원에 갇힌 까미유는 혼자 생을 마감한다. 유부남을 사랑한 죗값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삼각관계 사랑이 있다.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클라라는 14살 어린 브람스의 사랑을 허용하지 않았다. 클라라와 브람스의 사랑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 기획 의도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애달파하며 아파할지라도 언젠가 문득 생각이 나면, 그때는 용기 내어 다시 열어 들여다보고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그리고 또다시 잘 넣어 놓을 수 있을, 그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날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이다.

클라라가 문란한 사생활을 한 슈만을 버리고 구애하는 젊은 남자 브람스와 사랑을 했다면 육체에 갇혀 서로 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클라라에게 “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을 헌정했고 클라라가 고별무대에서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한 모습은 아픔을 함께 극복하는 연리지와 같다.

지금은 메꽃 뿌리처럼 질긴 감정이어서 도려내도 다시 솟아나 눈물이 날지 모르지만, 마음의 방 한쪽에 잘 넣어 놓는다면 브람스와 클라라처럼 오랜 인연으로 남을 수 있다. 마치 변함없는 연리지처럼….

줄기와 줄기가 만나 있는 그대로 상대를 존중하면서 서로가 성장하는 연리지 같은 사랑을 해야 오래가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변인 손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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