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목’이란
민의 뜻이 담긴 나무라는 의미
마을 노거수·천연기념물·보호수
방풍림 등 모두 포함하는 개념
설화·민담·전설·제례·기도 등
마을 역사 고스란히 담고 있어

민목(民木)은 백성의 나무, 즉 민중의 나무를 뜻한다. 민중은 우리네 평범한 소시민들로 이루어진 무리다.
수많은 별들이 빛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듯, 나무도 유한한 생명으로 생과 사를 반복한다. 별들도 각자 본성이 다르듯 나무도 오래 살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로 나뉘는데, 풍상을 헤치고 견고한 대지 위에 당당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노거수(老巨樹). 노거수는 오랜 세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로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을 당산목으로서의 수호신이며, 마을 공동체의 기억이며, 민중의 삶이 투영된 살아있는 역사서다. 끊임없이 생장을 위해 썩고 떨어져 나가는 나무의 파편들은 모두가 숲속의 크고 작은 동물과 바람과 햇빛의 소소한 이야기를 간직한 한 페이지 역사책의 편린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거수를 보호수(保護樹) 또는 기념물이라는 이름으로 지정하여 관리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보호수의 지정 해제가 늘고 있고, 개발과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민목(民木)은 점점 그 존재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목은 민중의 나무, 민의 뜻이 담긴 나무라는 의미다. 이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문화, 생태적 가치를 상징하는 나무들로, 구체적으로는 천연기념물나무, 노거수와 보호수, 마을의 좋은 기운을 보호하고 외기의 사악한 기운을 막으려 했던 비보수와 비보림, 농사를 위해 바람을 막아주고 강물이 넘쳐 홍수를 예방하고자 했던 방풍림, 또는 민간의 정성이 깃든 모든 성황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민목을 단순한 산림 자원이 아닌 역사·생태·교육 자원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하려는 노력의 필요성이다. 보호수는 산림보호법에 따라 지정되며, 대체로 수령이 100년 이상인 나무를 중심으로 선정한다. 그러나 보호수 지정만으로 나무의 생명이 온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10년간 전국적으로 보호수 해제 건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해제 이후에는 벌목 또는 방치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문제는 관리주체의 모호함과 예산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의 관심 부족이다. 지자체는 보호수의 유지·관리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관리 인력이나 기술이 부족하고, 예산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해제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대구 경북지역에서도 보호수 해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해제 사유 중 상당수가 고사 또는 고사 우려, 안전상의 이유라는 점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목민(牧民)과는 다른 의미로 필자는 민중의 나무를 민목(民木)이라 이름하였다. 목민은 임금이나 고을 원이 백성을 다스리고 기른다는 의미인데 반해 민목은 이름 없는 풀뿌리 민중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목은 본래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민목 자체가 바로 민중이자 백성이기 때문이다. 민목 그 자체로 보아서는 그것은 마을 주민 전체의 것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공공재다. 그러나 현재 많은 보호수가 사유지 내에 존재하며, 이로 인해 보호수 관리와 관련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유재산? 공공자산?
대부분 보호수 사유지 내 있지만
본래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재
관리주체 모호함 등 이유로
전국서 보호수 해제 건수 증가
벌목· 방치되는 사례도 속출
사유재산권과 공공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돌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노거수를 단지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닌, 교육자이자 스토리텔러로서의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지만, 마을의 설화와 민담, 전설, 제례와 기도, 농경과 풍수의 전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온 생명체다.
따라서 민목박물관은 이러한 생태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노거수 자체를 실내에 들여놓는 방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민목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환경 교육,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특정 노거수 주변을 하나의 생태교육 존(zone)으로 조성하고, 해당 나무에 얽힌 역사·문화적 이야기를 전시하며, 어린이와 시민을 위한 체험교육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나무를 중심으로 한 생태마을, 마을미술관, 노거수길 조성 등과도 연계될 수 있으며, 지역관광자원으로서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보호수가 사라지는 이유는 보호수 정책의 미흡한 점도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수난 역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폭우와 폭염, 태풍 등 보호수의 생육 환경 불량으로 빚어지는 훼손과 강풍으로 인한 절지와 절간, 도복의 증가로 향후 관리 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해외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천연기념물 보호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민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해당 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축제, 마을 문화행사 등이 많이 활성화돼 있다. 독일은 역사적 가로수길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문화경관을 보호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노거수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경관 구역 지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공통적으로 나무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강조하며, 단지 노거수를 생물학적 가치가 아닌 마을의 정체성과 문화적 서사를 함께 보존하는 데 주력한다. 우리는 여전히 나무를 병들면 자르고, 위험하면 없애는 방식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이제는 정책도,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민목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온 증거다. 그것은 땅에 뿌리내리고, 하늘을 향해 자란 세월만큼의 사람의 이야기와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누군가의 약속 장소였고,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었으며, 제를 지내던 신목이기도 했다. 그 민목이 지금은 쇠약해지고, 도시의 어느 건물 구석에 외롭게 서 있다면 우리는 이 나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새로운 시각 전환 필요
단순히 관리해야할 대상 아닌
체계적 보존·활용 노력 필요
나무에 얽힌 역사·문화 활용
지역 관광자원화 가능성 있어
새로운 역할·의미 부여해야
민목은 우리의 다난했던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추억을 되새기며 미래를 성찰하게 만든다. 한 그루의 노거수가 없어졌을 때, 그 손실은 단순히 생물 하나가 사라진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민중 역사의 단절이자 공동체 기억의 소멸로 이어진다. 민목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단지 나무 한 그루를 살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근원, 공동체의 뿌리,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민중의 시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일이다. 그 기억의 장소를 만드는 일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생태문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민목박물관은 산림 문화와 환경 교육, 공동체의 기억을 아우르는 융합형 문화 정책이며, 공공성이 담보되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민목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