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예전에 어느 기자가 한 유명 여류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감동적인 책을 하나 소개한다면 어떤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까?"

그때 작가는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라는 첫 문장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하며 감동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자신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심정에 그 책을 추천했습니다.

그 책은 텍사스 예배당에 걸린 1940년대 미국의 색면추상의 대가 마크 로스크의 작품 앞에서 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문형식으로 만든 책입니다.

사람들은 기쁠 때, 슬플 때, 그리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치유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정화의 눈물', 이렇게 세 가지 종류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 중 가장 감동적인 눈물은 당연히 '정화의 눈물'입니다. 예배당에 걸린 큰 캔버스에 그려진 형상이 없는 힌색과 검은색 만으로 완성된 단색조의 그림은 사람들을 정화시켰고 자신을 치유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예배당에 무심하게 걸려있는 작품을 통해서 치유가 되었을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숨겨진 감성을 깨우기 위해 그런 작가를 한 명 소개하겠습니다. 그 작가는 바로 멕시코의 전설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 입니다. 멕시코의 국보로 여겨지는 인물이면서 한국으로 치면 유관순 급으로 그녀의 얼굴이 멕시코 돈 500페소에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들어가 있으니 그녀의 명성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배경도 없었고 미술에 천재성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닥친 삶의 고난과 시련이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유일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역설적이죠?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고 18살 때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자신이 잡고 있던 손잡이 철봉이 빠지면서 그녀의 배를 관통하고 척추와 자궁 그리고 골반을 부수었습니다. 이어 그 찢어진 쇠봉은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찔러 1여년의 병실생활과 평생 크고 작은 대수술을 평생 30여 차례 하게 된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그녀가 정말로 불쌍하다고 여겨질 법한데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죽음 같은 고비는 그녀가 교통사고를 극복한 후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면서 동시에 바람둥이 작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하면서 새롭게 나왔습니다.

사고로 예술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칼로에게 남편 디에고는 소중한 조언자이면서 지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칼로의 결혼 생활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습니다. 남편 리베라는 수많은 여성과 외도를 했으며 결국에는 결코 해서는 안될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이 여러분들은 상상이 가십니까? 물론 나중에는 애증의 관계 속에서 남편을 용서하며 사랑의 결실을 원해 아이를 가지지만 이미 부서진 골반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무리하게 낳다간 산모와 아이 두 생명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출산을 시도하다가 3번의 자연유산까지 경험합니다. 한 인간에게 어떻게 까지 이렇게 모진 비극적 운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프리다 칼로는 무슨 힘으로 이 많은 시련들을 이겨냈을까요? 가끔씩 제가 강연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운명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4가지 고통 가운데 꼭 하나만 자신들의 운명 속에 넣어야 한다면 어느 걸 선택하겠냐고 질문하면 선뜻 넷 중에 하나를 쉽게 선택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피하고 싶은 비극적인 운명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슬픔, 고통, 비극을 피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직면하기로 말이죠.

그 직면의 힘이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과 소통하고 치유하고 그리고 정화했습니다. 그림은 자신의 놀이터였으며 안식처였고 자신의 일기장이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그림 속에서 아바타의 주인공처럼 자유롭게 놀았으며 휴식했고 또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에게 닥친 수많은 시련! 그 시련을 넘어서는 순간 그녀는 '전설'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희망을 보고 두려움 없이 당당했던 그녀의 긍정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아닐까요?

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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