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개인화 및 생애과정의 다양화를 배경으로 결혼, 자녀,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등 가족의 다양화 현상이 우리의 일상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2020년)에 따르면,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69.7%), ‘가족의 범위를 비혼 동거까지 확장해야 한다’(61.0%)로 나타나 국민의 인식 또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정책의 변화를 수반하였는데, 2021년 발표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2025 세상모든가족함께 (2021~2025)’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담고 있다.
그동안의 가족정책은 정책의 대상을 법률혼과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으로 한정함으로써 제도 밖 가족관계를 포괄하지 못했고 한부모, 조손, 다문화가족 등 가족 유형별로 지원함으로써 사각지대를 만들거나 오히려 특정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여성가족부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며 비혼, 동거가족 등 제도 밖 가족을 포괄하는 가족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가족다양성 인정’을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과제들을 제시하였다. 가족다양성을 수용하는 법·제도 마련, 가족다양성 인식과 평등한 가족문화 확산, 지역 기반 다양한 가족의 돌봄 지원 확대를 통해 모든 가족이 존중되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 조성을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2025년, ‘2025 세상모든가족함께’라는 정책 비전이 구현되었는가? ‘예’라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족다양성 정책에 대한 국민 인지도는 여전히 낮으며,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어떻게 실천적으로 반영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무엇보다 세부 정책과제들이 여전히 한부모, 미혼모부자, 청소년부모, 다문화가족 등 특정 형태의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에 치중되어 있어 포괄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그럼, 가족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이 될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6~2030)이 준비 중인 시점에서 가족다양성 인정을 위한 몇 가지 고민을 함께하고자 한다.
첫째, 가족다양성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으로 가족다양성 감수성 증진을 위한 교육, 콘텐츠 개발, 캠페인 추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에 있어 감수성 증진의 결과가 다양한 가족구성원들에게 실질적으로 체감되기 위해서는 이들과 직접적인 대면을 많이 하는 공무원, 각급 학교 교사,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에 대한 교육이 우선 되어야 한다. 또한 가족다양성 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콘텐츠 및 캠페인을 추진하여 국민들이 가족다양성에 대한 이슈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둘째,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가족다양성의 정책목표를 ‘특정 유형의 가족을 지원하는 측면’ 즉, ‘가족구조와 유형’의 다양성에 국한되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기능적 특성’과 ‘가족 생애과정의 역동성’ 측면에서 좀 더 포괄적인 가족다양성에 대응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셋째, 정서적 지지, 돌봄 및 부양 기능을 공유하는 제도 밖 관계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것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으로 접근할 수 있다. 2023년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이 법률안은 생활을 공유하고 돌보고 부양하는 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정의하고, 현행 관련 법에서 인정하는 특정한 가족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안정적인 가족생활 영위를 지원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돌봄과 부양을 하고 있지만 법적 가족관계라는 벽에 부딪혀 공적 사회보장 체계에서 소외되는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실질적 생활 단위를 중심으로 한 가족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여기 한 사례를 소개한다. 학교에서 숙제로 가족 토론을 하라며 양식을 나누어 주셨다. 양식에는 아빠 의견, 엄마 의견, 내 의견을 적는 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아빠가 계시지 않아 ‘아빠 의견’을 비운 채로 제출했더니 선생님이 “아빠는 왜 같이 참여 안 하셨어?”라며 물으셨다. 아빠가 계시지 않다고 하니 “선생님이 생각이 짧았구나. 다음부터는 ‘보호자’로 수정할게”라고 말씀하셨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제 가족다양성을 고민할 때이다. 다시 한번, 여기 다양한 가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