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든 LED 스크린·영상
미디어아트 전시 과잉시대
기술만 있다면 체험에 불과

오는 9월, 필자는 또 한 번 전통과 기술을 융합한 전시를 기획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시아와 한국의 고유한 문인화 풍경을 AI 데이터로 학습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적 사유를 재해석하려 한다. 혼란스럽고 속도감 있는 이 시대에 한 템포 느린 여유, 여백의 미학, 삶의 본질로 돌아가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관람객들이 ‘와’할만한 화려한 그래픽기술보다도 고요하게 ‘사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작품의 관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닿을 수 있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예술의 가치를 담고자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탈디지털화·탈AI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첨단 미디어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AI 그래픽, 인터랙티브 디바이스, 감응형 사운드와 같은 장치들이 연출팀 회의의 주된 화두다. 이 과정 속에서 필자는 한 가지 불편한 자각을 하게 됐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예술 표현의 스펙트럼은 넓어졌지만, 오히려 전시의 형식은 점점 더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갤러리나 미술관을 찾는다면, 그 어디에서든 LED 스크린, 몰입형 영상, 프로젝션 맵핑, 센서 기반 상호작용 장치를 마주하게 된다. 모두가 ‘미디어아트’라는 동일한 틀 안에서 서로를 복제하듯 유사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기술의 활용이 목적화되고, 콘텐츠와의 내적 대화 없이 외형적 스펙터클로 치우친 결과다.
최근 더 가디언(The Guardian)의 루시 하드캐슬(Lucy Hardcastle)은 “기술은 예술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L.A. 타임스의 데보라 반킨(Deborah Vankin)은 미디어아트 전시의 과잉 현상에 대해 “감각적 몰입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작품이 질문하는 바는 흐릿해졌다”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한 공통된 현상으로, 관람객들은 새로운 형태의 감각적 자극보다는, 진정한 사유와 감동을 갈망하고 있다.
미국 기반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레딧(Reddit)의 한 디지털아트 기반 커뮤니티에서는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잘 만들어진 복제물들이 더 이상 희귀하지 않고, 이전 수백 시간 노동이 필요하던 작업이 이제 흔해져 피로가 예견된다”고 한 사용자가 예측한다. 또 다른 디지털 아티스트는 “디지털 아트는 인터넷이나 특정 이벤트를 제외하면 전통 미술계에서 쉽게 존중받지 못하고, 알고리즘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디지털 기반의 예술이 더 이상 ‘신기한’ 것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예술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기술의 유무나 디바이스의 활용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무엇을 ‘묻고’ 있는가이다. 따라서 진정한 창의성이란,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관통하는 철학과 태도에서 출발한다. 기술은 계속 진보하겠지만, 그 속에서 예술은 반드시 새로운 ‘사유의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 단지, 더 화려하고 더 놀랄만한 기술적 표현 방식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대 소셜 미디어 환경은 단지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레딧(Reddit) 사용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중독된 문화, 좋아요와 리그램을 위한 아트가 대량 생산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는 예술의 의미와 깊이를 억압한다는문제를 제기한다.
관객도 감각 자극에 피로 호소
진정한 사유·감동 원하는 추세
‘좋아요’ 위한 대량생산도 문제
기술은 창의성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매개로 무엇을 사유할 수 있는가에 있다. 지난 주말, 부산 아르떼뮤지엄에서도 미디어아트 전시가 한창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었다. 지그시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해볼 틈도 없이 분주한 전시장 안에서 현란한 조명과 분위기를 ‘체험’하는 부지런함을 경험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예술전시에서 기술적 ‘쇼’만 남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정보전시 또는 일시적 체험일 뿐이다.” Jade Rawling는 이 현상을 Greenberg의 ‘아방가르드와 키치’ 구분을 빌려 설명하며, “예술이 소비되고 버려지고 교체되는 순간, 스스로를 자유케 하는 예술의 힘을 잃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사유로 승화시킨 전시 사례가 있다. 2023년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Refik Anadol의 《Unsupervised》 전시는 AI 알고리즘이 수백만 장의 현대미술 작품을 학습한 뒤 생성한 이미지들을 대형 LED 파노라마에 실시간으로 펼쳐 보였다. 하지만 이 전시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다. 작가는 “AI는 기억인가, 망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창작 기억이 기계에 의해 ‘재편집’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제기했다. 관객은 그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 앞에서, 인간의 예술적 정체성이 어디까지 위임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되묻게 된다.
신기술 개발은 해답될 수 없어
기획적으로 사용하는 법 터득
새로운 사유의 방식 제안해야
필자가 기획하고 있는 전시는 한국의 전통 회화 양식에 기반한 AI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관을 재해석하는 시도이다. 기술적 장치는 철저히 사유를 위한 통로로만 사용된다. 노장철학의 ‘비움’과 ‘여백’을 표현하기 위해, 미디어 기술은 되레 덜 쓰이고, 상호작용은 느리게 흘러가도록 설계되었다. 이것은 기술의 반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기획적으로’ 사용하는 예술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술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시대마다 예술이 취하는 형식은 달라졌지만, 그 근본에 놓인 사유와 태도는 늘 인간에 대한 질문,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출발해왔다. 오늘날 마주한 디지털아트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을 통해 구현되는 시청각적 자극과 몰입형 경험은 분명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자극이 반복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새로움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회의감이 예술계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자 방향이다. 이제는 ‘더 센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 예술을 새롭게 만든다. 기술을 넘어서는 예술의 사유, 그것이 오늘날 디지털아트가 다시 태어나야 할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