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스칼라극장 예술 감독에 즈음한 언론의 표현은 대동소이하게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스칼라극장 감독에 취임하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라스칼라극장을 ‘몇몇 중의 하나’라고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흔히 이탈리아 라스칼라극장,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이하 메트)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을 3대 오페라하우스로 꼽지만 독일, 영국, 프랑스, 어쩌면 러시아 까지 우리가 3등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라며 불만을 표할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선망하는 최고 수준의 오페라하우스는 즐비하다. 하지만 라스칼라를 최고의 극장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이렇다.
이미 20세기 초 뉴욕의 메트는 테너 엔리코 카루소, 바리톤 티타 루포 그리고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 등 소위 오페라 황금트로이카의 주 무대였다. 이들로 인하여 오페라의 황금기는 문을 열었고 그 뒤를 이은 50~60년대 전설적 성악가들 역시 뉴욕 ‘메트’에서 수많은 기념비적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이는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자본의 뒷받침이 되는 뉴욕은 세계적 스타들이 서기를 꿈꾸고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빈 국립오페라하우스 역시 최정상의 아티스트만이 이 무대에 설 수 있으며 세계최고의 교향악단인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이 극장의 대부분의 작품에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오페라 종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극장은 뉴욕만큼의 자본도 없고 비엔나 수준의 오케스트라도 없다. 라스칼라극장 오케스트라 역시 별도의 콘서트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지만 그 존재감은 약하다. 그런데 왜 라스칼라극장을 가장 높이 쳐야하는가? 나는 밀라노를 유학지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라스칼라극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학생활 동안 이 극장을 참 많이도 찾았다. 그런 나의 눈에 라스칼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있어서 뭐하나 입댈 곳 없는 완벽한 무대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극장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무대에서는 그 사운드가 달라진다. 특히 베르디를 비롯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주요 작품에는 그 완성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라스칼라에서 만드는 모든 오페라가 메트를 비롯한 다른 극장의 작품보다 항상 우월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예를 들어 오페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베르디의 작품을 이곳보다 더 잘 만드는 곳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그들은 정말 차갑고 자존심이 세다. 특히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기면서 국가는 빛을 잃어가고 젊은이들은 미래에 큰 희망을 걸기 어려운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오페라는 그들의 마음을 모으고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라스칼라가 있고 그들의 영원한 자존심이 그곳이다. 그래서 국가적 역량을 모으는 곳이다. 그런 라스칼라극장의 모든 예술적 권한과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정명훈을 지목 한 것이다.
부산으로서는 멋진 하드웨어를 만들게 되면서 그것을 채워나갈 사람, 즉 소프트웨어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구성하게 되었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필요충분조건을 제대로 갖춘 제작극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의 경우 오페라·발레를 자체 제작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합창단, 발레단 그리고 수많은 무대 전문가들이 극장소속으로 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이것이 제작극장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예산과 고용의 부담으로 인하여(예산문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다른 문제다) 이런 것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제 부산에서 이것을 만들 수 있는, 다시 오기 힘든 최고의 조건이 이루어 졌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이런 제작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초청공연 위주로 간다면 왜? 라는 수많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라스칼라극장 오페라와 겨룰만한 작품을 그곳에서 만드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