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현 부국장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은행이 예금이자는 찔끔 주고 대출이자는 과도하게 받는다”며 은행의 ‘이자 장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단순한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예대금리차로 사실상 앉아서 막대한 돈을 긁어모으는 은행들의 공공성과 윤리의식 실종에 채찍을 든 것이다.

지금까지 정권의 보호아래 합법적인 ‘돈놀이’로 앉아서 편안하게 돈을 벌었던 은행들이 어려운 경제에 등골이 휘는 서민과 영세자영업자들을 외면한 채 오로지 수익만 추구하는 행태가 국민들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눈에도 못마땅하게 비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대금리차로 인한 은행의 이자수익은 당연하지만 정작 문제는 ‘정당하고 납득할 수준’의 마진을 넘어 사실상 고금리로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데 있다. 이런 구조는 서민과 중소기업, 청년층에게 ‘이중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고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생존마저 위협받는 경우도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필수인 서민들이 겨우 새 집을 장만하고도 내뱉는 ‘내 집이 아니라 은행꺼’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 상반기에만 24조원이 넘는 이자이익을 올렸다. 2023년에는 이들 5대 금융지주(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농협금융)의 이자이익은 42조7천억원으로 전체 순이익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완전 ‘땅짚고 헤엄치기’다. 이게 정상인가.

이 시기 은행의 평균 예금금리는 3% 내외였으나 대출금리는 6~8%, 신용등급이 낮으면 10%를 넘나들었다. 예대금리차가 3~4%포인트 이상으로 예금금리에 두배를 얹어 빌려주면서 사실상 폭리를 취했다.

은행들은 서민들의 등골로 막대한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은 고위 임원의 억대 성과급과 주주배당으로 나눠간다. 금융취약계층이나 중소기업에 재투자되지 않고 오히려 고배당, 고성과급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23년 국내 은행 대부분 CEO는 연봉과 성과급을 합쳐 10억원 이상을 받았고 은행 임직원 평균 연봉은 1억원을 넘겼다. 물질만능시대 은행이 최고 직장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다.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은행들이 국민의 어려움은 도외시한채 임직원과 주주 이익에만 신경쓴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은행들의 가장 큰 문제는 위험은 회피하면서 수익만 극대화하는 ‘안전한 돈놀이’에만 치중해 왔다는 점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금융상품 개발이나 중소기업 투자, 사회적 금융 확대보다는 떼일 걱정없는 ‘안전한 담보대출’과 ‘이자 장사’에 집중해왔다. 금융의 기능인 자본의 효율적 배분과 지원은 외면한 채 역대 정부의 정책에 일희일비하는 관치금융의 역할만 충실히 해 왔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런 은행들이 최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업대출과 벤처·혁신기술 투자를 늘리는 등 생산적인 투자 확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정부의 약발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볼 일이다.

은행들도 할 말이 많겠지만 최근 한 조사에서 은행권이 예금금리는 빠르게 내리고 대출금리는 천천히 내리면서 예대차익을 크게 확대했다는 비판에 10명 중 8명이 공감한다고 한 점도 새겨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은행은 사익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돈의 흐름이 건강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의 역할임을 명심하자.

은행은 이익만 추구하는 사기업이 아니다. 국민의 자산을 보관하고 통화정책에 협조해 국가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공공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공공성과 형평성을 지키는 윤리적 의무가 있다. 이자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혁신 투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융지원에 미온적인 행태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닌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대금리차 조정 유도, 서민금융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금융투자 활성화 등 균형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이자수익은 금융기관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담보로 얻은 것이다. 대통령의 지적은 일회성 비판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돼 온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고로 이제 금융권과 정부 모두가 응답해야 할 때다.

‘이자장사’가 아닌 ‘가치를 만드는 금융’으로, ‘수익기관’이 아닌 ‘신뢰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은행이 살아남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임상현 부국장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