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에 대한 생태인문학적 접근의 필요성
심겨진 당시 역사·사상적 배경 등
인간이 개개인 삶을 기록하듯
민목 한 그루의 역사도 보존 필요

자연에는 계산도 모순도 없다. 모순은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판단이나 어떤 사태, 주장 등, 수 많은 대립 관계를 모순의 집합체라 보면 되겠다.
인간 사회의 모순은 불가피한 것이며, 가까이서 보면 모순 덩어리처럼 보인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미국의 정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들의 공동 저서 「기울어진 평등」에서 우리 사회가 부를 어떻게 축적하고 어떻게 그 부를 나누지 못했는지를 보여주었고, 그 속에서 정의가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당연히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가지는 문제점을 깊이 있게 대화 형식으로 토론한다. 사회적 불공정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규율에 의해 고착화 되었고, 특히 기울어진 평등이라는 인간 사회의 구조적 불공정을 적시하고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공정도 포함한다.
자연에는 모순이 없다고 했지만 자연에도 모순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인간에 의한 구조적인 모순일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목재를 활용하거나 인위적으로 산림의 나무 수종을 갱신하기 위하여 개벌(전체 벌목)을 하고 단순림으로 인공 조림을 한 경우가 바로 자연의 구조적 모순에 해당할 수 있다.
그것은 산림 수종의 다양성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당연히 구조적 모순이다. 산사태나 산불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난 산림 생태계의 변형 또한 구조적 모순에 해당한다고 봐야한다. 다만 자연재해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의 간섭에 의해 일어난 경우가 해당된다. 인공조림, 사방댐, 수종 갱신, 임도 개설, 주택 건설 등 다양한 원인을 구조적 모순으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간섭이 어디까지 미쳤는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필자는 지금 노거수를 가지고 인문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계산도 없고, 모순도 없는 자연의 본래 모습이 인위적 계산과 간섭에 의해 인류에 해를 입힐 수 있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나무, 특히 노거수를 대하는 무심함을 생태인문학적 관점에서 우리들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하기 위해서다.
요즘 신문, 방송, 유튜브 등에서는 인문학이란 주제로한 강의와 강연이 차고도 넘친다. 위키백과의 인문학의 정의는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종합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라고 되어있다. 이 범주에는 고전, 역사, 음악사학, 공연예술, 철학, 종교, 미술사학 등이 있다. 여기서 경험적 학문은 오히려 인문학의 범주에서 가볍게 취급되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인간 생명의 존립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경험적으로 접근하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인문적 접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앞서 불공정에 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점에서도 언급했듯 자연의 모순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간섭이라고 했다. 종교 철학적 관점에서 우주는 자비의 행업이라고 한다. 우주는 원래부터 선한 것이며,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작용을 한다.
인간의 행위가 공동의 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할 것이다.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며, 나아가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은 자연으로부터 나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의 저자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은 이름이 많을수록 문화적으로 중요하다라고 했다. 하나의 식물을 두고 지역마다 여러 가지 이름이 불렸던 것도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관계되는 이유 때문이다.
팽나무를 예를 들면, 경북 경주, 영천 등지에는 팽나무, 전라도 일부 지역에는 펑나무, 강원도 일부 지역은 방나무, 제주도에는 펭낭, 충남에는 펭기나무 등 지역의 방언이나 음운 변화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각각 다르다. 바로 지역의 언어를 포함한 문화적 차이 때문인데, 문화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찌보면 인문학은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덧 여름의 한 가운데인 8월, 8월은 풍요의 시기로 노거수에도 무수한 잎들과 이끼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미생물과 동식물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품고 하늘을 향해 전진하는 계절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노거수의 생로병사의 과정은 공생과 나눔의 경제가 아닐까. 화폐경제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순환하고 선물하고 받아들이고 내어주는 이 일상의 사이클이 바로 자연의 본래 모습이기에 가능하다.
자연의 순환 원리를 모방한 공유경제 모델은 그 하나의 모습이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간다. 예를 들면 산림의 풍치, 해변과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공간의 아름다움 등 순수 자연을 제외한 농촌 들녘의 계절별 풍경과 공공의 도서관, 시민공원, 산책로 등은 모두 공유재로서의 역할을 한다. 다만 이들 공유재는 비용의 투입이 없이는 지속 가능성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노거수의 생명 순환의 원리에는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노거수는 자연 환경이 가져다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키머러는 자연이 주는 것을 인간의 유용한 자원으로 인식하는 대신 선물로 생각할 때 좀 더 소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고 했다.
노거수에 생태인문학 옷 입혀
민중의 뿌리를 이어가는 과업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시작해야
서구 유럽인들은 해외를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그 나라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 인식과 관련한 문제겠지만 우리나라는 재방문율이 낮다고 한다. 이유는 우리만의 역사와 우리만이 가진 이야기가 있는 유산을 찾아보기 어려워서일 게다.
우리나라에 수만 그루가 존재하는 노거수, 이제는 우리의 역사와 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겹겹이 쌓여있는 노거수에 생태인문학의 옷을 제대로 입혀야하지 않을까.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우리의 민화가 우리만의 독특한 예술로 승화했듯, 노거수를 통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민중의 뿌리를 잇는 과업을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시작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거수는 결코 잊지말아야 할 생명 유산이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