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건강보험의 역사가 35년을 넘어섰다. 1977년 건강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후 대상자가 점차 확대되면서 1989년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의료보장의 시대가 열렸다. 지난 2022년에는 한해 건강보험 진료비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 적용 대상의 확대는 재정적 위험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최근 건강보험 재정 전망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당기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누적수지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활동 인구 감소와 가파른 고령화, 공급 요인 등이 모두 건강보험 재정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비록 사회보험 성격을 띠더라도 전 국민의 건강을 살피고 보편적 건강보장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원을 통해 건강보험 수입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연구원이 발간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원 안정화 방안’에서는 인구구조 변화가 건강보험의 재정적 위험성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령 인구 증가로 만성질환 관리·의료 서비스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반면 경제활동 인구 감소로 노년 부양비가 증가하는 현실이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65세 이상 고령층의 건강보험 진료비(환자 본인부담금+급여비) 총액은 2020년 37조4천737억원에서 지난해 52조1천221억원으로 39.1% 급증했다. 전체 대비 6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 비중은 지난해 44.8%까지 불어났다.
이에 더해 요양기관 수 등이 진료비 증가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따른다. 진료비 증가의 원인이 의료기관과 병상 수 같은 공급 요인에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건강보험연구원의 ‘건강보험 진료비 영역별 지출 요인 분석’에 따르면 입원 진료비의 경우 인구 천 명당 병상수가 1% 증가할 때 진료비가 약 0.21%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래 진료비의 경우에는 공급 요인으로부터 더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인구 10만명당 의원 등 요양기관 수가 1% 많아질수록 외래 진료비는 약 1.64%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진료비 증가분 중 상당 부분이 기존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었다.
보고서에서는 2017년 이후 ‘의원 외래 진료비’ 증가분의 50% 이상이 분석 모형에 포함된 변수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설명되지 않는 요인’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를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 새로운 정책 도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진료비 증가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건강보험 재원 구성은 여전히 단순한 실정이다.
지난 2023년 건강보험 재원 구성을 살펴보면 총 수입 88조7천773억 중 중 보험료 수입 86.2%, 정부지원금 11.8%, 기타 1.9로 구성돼 보험료 수입의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일본(보험료 수입 40% 내외), 프랑스(36.8%), 대만(68.0%) 등 주요국보다 보험료 수입 비율이 높고 정부지원금의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국민부담 수준도 주요국에 비해 낮아 건강권에 대한 정부의 책무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건강보험료 이외의 재원을 확보해 보험료 수입의 의존도를 낮추고 다양한 재원을 통해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소득 중심의 현행 보험료 부과 체계를 넘어 프랑스의 ‘사회보장분담금(CSG)’처럼 다양한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사회보장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강보험의 지속성을 위해 단순 모니터링을 넘어 사회와 인구구조, 의료 공급 체계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 관리 전략이 시급한 시기이다. 보편적 건강보장의 가치를 거저 얻을 순 없다.
김수정 사회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