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 뉴미디어부장

“요즘도 CD로 음악 듣는 사람이 있어?” 가끔 좋아하는 가수나 연주자의 앨범을 산다고 하면 받는 질문이다. 한때 당연했던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하지 않게 됐다. 음악 소비 방식이 바이닐(LP)에서 카세트테이프, CD를 거쳐 다운로드·스트리밍 시대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국내 음반시장의 최고 전성기로 불리던 2000년대 초반, 조성모의 ‘아시나요’가 실린 앨범은 196만 장, god의 ‘거짓말’ 앨범은 185만 장이 팔렸다. 당시만 해도 음악은 실물로 앨범을 ‘소장’하면서 듣는 것이었다.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음반업계에서는 ‘오프라인 음반시장은 곧 사라질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예측은 빗나갔다. 최근 몇 년간 실물 앨범 판매량은 가파르게 늘어 2023년에는 1억 1천909만 장을 기록했다. 2024년 판매량이 약 9천 837만 장으로 성장세가 꺾였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집에 CD플레이어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 많은 앨범은 누가 듣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앨범 판매량의 대부분은 음악 감상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초동(앨범 발매 후 1주일간의 판매량) 기록으로 평가를 받는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초동 기록을 위해, 혹은 커버를 달리한 여러 버전의 앨범, 랜덤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같은 앨범을 수십, 수백 장 까지 사는 이들도 있다. 어도어의 전 대표 민희진 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지난해 4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랜덤카드 만들고 밀어내기 안했으면 좋겠다.”며 “그게 다 팬들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에는 팬서비스를 위해 시작된 포토카드 증정문화가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미끼상품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구매한 앨범은 포토카드만 챙기고 버려지거나 기부라는 이름으로 복지관이나 아동센터 등에 전달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부문화에 대해 기부받는 쪽이 난색을 표하는 일도 있다.

앨범 구매를 위한 개인의 금전적인 소비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필요없는 앨범을 생산하고 구매하고 처리하는데서 생기는 환경문제다. CD는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에 얇은 알루미늄을 씌운 형태로 제작된다. 폐기시 수백 년간 분해되지 않는다. 케이스와 코팅된 포토카드 등도 마찬가지다. 

2021년 이러한 환경문제에 뜻을 같이하는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모여 ‘케이팝포플래닛’이 출범했다. 그들은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라고 말한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너의 컴백, 나의 기후행동’이라고 적혀있다. 최애의 컴백을 기다리는 ‘덕후’의 마음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함께 담긴 캐치 프레이즈다.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 청원에는 1만 1천 명 이상이 서명했다. '차트 1위'와 '판매량 기록'이 주는 기쁨이 지구의 환경을 위협하는 아이러니에 이들은 차트 집계 방식을 바꾸고, 디지털 전용 앨범과 재활용 체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9일 정규 2집 앨범 ‘IM HERO 2’의 발매를 앞두고 있는 가수 임영웅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이번 앨범은 피지컬 앨범(CD앨범)을 발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러한 결정의 이유를 ‘CD앨범을 실질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운 환경, 팬들의 정성과 응원이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환경적 고민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CD는 없지만 화보가 담긴 패키지(앨범북)로 제작해 음악은 디지털로, 소장과 기념은 앨범북으로 할수 있도록 했다.

소위 ‘덕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발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임영웅의 이번 앨범은 CD가 없어 써클·한터차트 등이 공개하는 음반 판매량 집계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22년 발매한 그의 1집 ‘IM HERO’의 초동 기록은 114만장으로 솔로가수 중 역대 1위다. 3년만에 발매되는 앨범이니 만큼 1집을 뛰어넘는 초동기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결정은 더 상징적이다. 팬덤 ‘영웅시대’ 역시 ‘환영’과 ‘아쉬움’ 등 의견이 다양했지만 임영웅의 결정에 동참을 약속하는 분위기다. 앨범 구매를 위해 모아두었던 금액을 소외이웃을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의 이러한 시도가 케이팝 시장에 전환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가수에게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초대형 팬덤을 가진 톱스타와는 달리 중소·신인 가수에게 이러한 시도는 손익구조에서 더욱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무조건적으로 가수들에게 이러한 결정을 떠넘길 수 없는 이유다. 결국 기획사의 마케팅 구조 개편이나 차트 집계 방식의 변환, 그리고 팬덤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만 관행이 바뀔 수 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이번 변화는 ‘미래를 향한 작지만 소중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는 임영웅의 결정이 작지 않은 울림을 전해준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이 지구를 응원하는 행동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배수경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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