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어느 해 여름방학 중에 학생들 틈에 섞여 일본어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어느 여학생이 자원해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저런 노래도 있나 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집에서 우연히 TV 음악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데, 똑같은 노래를 남자 3명이 춤추면서 불렀다. 젊은 청중들이 열광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부른 <난 알아요>였다. 이후 랩음악이 젊은이들을 강력하게 장악해 버렸다.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겼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세대와 형 세대다. 아버지 세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약관의 나이에 해방을 맞았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오시면 술잔을 들면서 시끌벅적하게 말씀 나누셨다. 취기가 오르면 황성옛터(남인수 1928), 짝사랑(고복수 1936년), 나그네의 설움(백년설, 1940), 신라의 달밤(현인, 1947)을 흥겹게 불렀다.

갈대의 순정으로 톱가수 반열에 오른 박일남 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노래를 녹음해준 에피소드를 증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박대통령 승용차에 스피커가 앞뒤로 달려있었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박대통령이 들을만한 가요테이프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박일남 씨는 ‘산팔자 물팔자’, ‘복지만리’, ‘나그네설움’ 등 40여곡을 불러 만들어 드렸다고 했다. 박대통령은 ‘촌지’라고 쓴 봉투를 주셨으며 그 속에 약소하지 않은 돈이 들어 있어 박일남은 동료들하고 맘껏 술 마셨다고 했다. 그 당시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정감이 가는 증언이었다.

반면 형들은 장발에, 통기타에 청바지를 입고 포크송이나 팝송을 즐겨 불렀다. 그 시대에는 승리의집(빅토리아)과 해오라기와 같은 음악감상실이 유행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장발 단속을 했다. 학생들이 공부도 안하고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노래를 부른다고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유신독재가 청년 문화를 억압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아버지 세대와 형 세대 간의 문화적 충돌이 아닐까 한다. 필자도 청바지를 입으면 아버지가 못마땅하게 생각해 대학 고학년이 되어서야 편하게 입을 수 있었다. 아버지 세대를 곁에서 직접 겪어본 바에 의하면 권위주의적이었다.

음악에 대한 편견은 음악 내부에서도 일어났다.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부르면 그 세계에서는 엄청난 비난을 받음과 동시에 퇴출의 대상이 된다. 노사연이 단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에 다니던 1978년, 그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그녀는 ‘돌고 돌아가는 길’을 불러 금상을 수상했다. 기쁨도 잠시, 클래식을 하는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결국 다른 과로 전과해 졸업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테너 박인수 교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89년 클래식과 가곡을 접목한 국민가요 ‘향수’를 이동원과 함께 불러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향수는 정지용 시에 작곡가 김희갑 씨가 곡을 붙여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부른 가곡이다. 향수가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콜라보는 상당히 생소했고, 이 때문에 박인수 교수는 클래식계의 반발로 국립 오페라단에서 제명당했다. 이미 1981년에 스페인 출신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 컨추리 가수인 존 덴버가 부른 퍼헵스 러비(Perhaps Love)가 발표돼 큰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었지만….

우리 애들이 청소년 시절 인기 높던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보고 싶어하면 ‘내일모레 시험인데 왠 공연?’하면서 불편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연장까지 태워줬다. 콘서트홀에 입장하고 나면 집사람과 커피를 마시면서 의도하지 않은 데이트를 즐겼다. 그렇다고 아버지 세대들처럼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 않고 콘서트장에 간다고 혼낼 수도 없었다.

좋아하고 안하고, 그리고 옳고 그름을 떠나 늘 큰 흐름은 있다. 아이들이 BTS와 블랙핑크에 환호할 때 정훈희 씨가 부른 ‘안개’나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렇다고 이들과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시봉을 보면서 아이들이 아빠 세대에 공감했다. 필자도 뉴진스의 하니가 부른 푸른 산호초에 공감했다. 내게 익숙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지금은 따라 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내면적으로 반발했던 것 같아 사실관계가 잘못되었거나 의견을 물어보면 그때 말한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맞다고 해도 남들이 귀담아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 추억을 더듬으며 노래를 듣고 즐기는 사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한 걸음 또 한걸음 진화하면서 K-팝을 만들지 않았던가? 어느 사회든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그것이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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