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제주도 가로수인 삼나무가 잘려 나가는 사진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 길에 살던 나무를 포함한 주변 생명체들이 입은 피해는 당연하거니와 길 자체가 갖는 고유한 의미를 잃는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릴 적 고향 마을을 지나는 신작로에 포플러나무가 길게 서 있었다. 신작로 흙자갈 위로 버스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생긴다. 그 버스를 따라 뛰는 사내아이와 먼지를 피하려 입을 막던 새침데기 소녀는 한 갑자를 살았다. 뛰어가던 사내아이 책보 속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는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포플러야. 신작로 가에 한 줄로 서서 벌을 받는 포플러야,
너희들은 마룻바닥에 꿇어앉는 대신 길가에 먼지를 덮어쓰고 서서/
언제나 사람들이 짐짝같이 실려 가는 차를 보고 있어야 하고/
책 보퉁이보다 무거운 걱정을 한 아름씩 안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구나(이하 생략)
이오덕 선생님의 포플러 가로수 글은 추억을 소환한다. 대구 인근 치산 효령로 근처에 포플러 가로수 길이 일부 남아있다. 영천 쪽에 갈 일이 있으면 나란히 놓인 고속도로를 거부하고 일부러 포플러 가로수 길로 다닌다. 그 길에는 치산계곡을 빚은 팔공산이 보이고 치산계곡 물줄기 따라 밭이 보인다. 농작물을 훔쳐가지 마라는 글귀를 보이나 그 글귀를 쓴 농부는 보기는 어렵다.
일본 북해도 들판에 포플러나무 한 그루를 보러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Ken & Mary Tree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1972년 Loveのスカイライン(Horizon of Love) 광고의 배경이 된 후 명성을 얻어 북해도 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어릴 적 동네 하천가에 Ken & Mary Tree와 같은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있었다. 멱을 감다가 소나기를 만나면 나무 밑에 머물렀다. 도시에서는 다닥다닥 붙은 건물 처마 입구에서 소나기를 피할 수 있지만 들판에서 소나기를 만나면 오직 아름드리나무 밑이 피난처이다. 아름드리나무가 들판에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적 들판의 포플러 나무나 Ken & Mary Tree를 나무 하나만 두고 비교해 보면 비슷하지만, 주변이 만드는 풍경은 달랐다. 넓은 능선이 주는 여유로움도 있지만 자라는 곡식이 만든 패치워크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북해도 비에이 Ken & Mary Tree 주변은 다락논과 같은 테셀레이션(쪽매맞춤)이 아니라 탁 트인 대지를 덮은 식물 조각보 같다. 조각을 모아 아름다움을 만드는 패치워크는 우리나라 보자기가 원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 나간 엄마가 밥상을 덮어두던 상보도 패치워크다. 상보를 들추며 오늘은 콩자반이 있나? 생각을 하고 엄마는 언제쯤 오실까 궁금해 했다. 요즘이야 휴대전화로 바로 어디냐고 대화를 하니 궁금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
패치워크와 나무가 만들어 낸 북해도 Ken & Mary Tree 인근에 있는 세븐스타 가로수 길도 유명하다. 이곳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통행에 문제가 생기고 사진 촬영을 위해 밭으로 들어오는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결국, 올 1월 Ken & Mary Tree 인근의 세븐스타 나무인 자작나무를 주민 스스로 다 잘랐다. 주민들이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으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제주도나 신작로도 넓히면서 가로수를 베어내지 않고 땅을 좀 더 매입해서 옆으로 심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포플러 가로수 사이 아기 손 모양 이파리가 반겨준다면 이글거리는 회색빛 아스팔트도 덜 보기 싫을 듯하다.
상보, 책보를 대신하여 일상 속 흔했던 보자기는 이제 공예전시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시대이다. 그림이나 글을 AI가 알아서 쓰는 지금, 나무를 지키고 추억을 소환하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이오덕 선생님처럼 작가를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모네처럼 포플러를 연작으로 그리는 화가를 만들자는 말은 더 더욱 아니다.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들판의 나무나 시골길 같이 소외되는 존재를 더 많이 사랑한다면 마음 속 시원하게 뻗은 포플러 한그루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전 대변인 손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