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아이는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준다.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것,

항상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

지치지 않고 싸우는 것

- 파울로 코엘료



‘어린이는 나라의 희망이오’라는 소중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준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931) 선생의 말씀을 귀하게 새기는 요즘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방정환의 유훈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시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오”이다. 그의 사상인 어린이 문화 운동을 선양하고 실천하는 단체로는 색동회가 있다. 대구지역에도 (사)색동회 대구지회가 설립(창립추진위원장, 곽홍란)되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색동회의 주요활동은 어린이와 어르신께 좋은 동화 들려주기, 동요 함께 부르기, 찾아가는 어린이 뮤지컬 등을 운동처럼 한다.

책속의 이야기를 눈으로 읽는 수동적이 독서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소리 기법을 활용해 맛있게 들려주는 동화구연과 리듬과 율동이 접목된 동요 합창을 통해 개인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사회의 정서를 순화시키겠다는 소신의 발현이다. 또한 색동회는 해마다 어린이동화구연대회와 찾아가는 어린이뮤지컬 공연 그리고 이 운동에 동참할 활동가와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을 한다. 얼마 전에도 이 단체가 주최한 동화구연대회가 열렸다.

어린이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학교 문을 닫게 되었다는 초등학교 폐교 소식을 들으면서도 색동회는 어린이 운동에 동참할 신입 동화구연가를 뽑고 축하한다. 일각에선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발언도 들린다. 그런 슬픈 말들을 가슴 깊이 새기며 우리나라 동화구연의 시작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색동회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조직된 것은 1923년 5월, 방정환을 중심으로 일본에 유학중이던 조재호, 윤극영, 진장섭, 손진태, 마해송, 정인섭 등의 선각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청년 방정환은 평소 성실하고 열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가 열아홉 살 되던 해는 우리나라에 신문화운동이 한창 일어나던 1917년이었다. 100여 만명의 신도를 거느린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은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만 따지면 남부럽지 않은 형편이었을 텐데 자족하지 않았다. 부귀영화를 박차고 나와 어린이 운동에 전력한다.

이 시기 일본제국주의는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사회·경제적 수탈의 극대화와 함께 우리 민족을 지구에서 소멸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은 일본의 강제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만세운동의 불꽃이 타오른다. 이 사건이 기미년 3·1 만세 운동이다.

당시 방정환의 주거처였던 천도교 보성사(普成社)에서는 이 해 3월 1일자 〈조선독립신문〉이 비밀리에 간행되고, 3·1운동 사실을 알린 것이 발각되어 주동자가 체포된다. 이때 청년 학생들은 비밀리에 방정환의 골방에 모여 등사판 신문을 발행하였고, 이것을 돌린 것이 발각되어 방정환 또한 온갖 고문과 고초를 당한다.그후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의해 3·1운동의 기세는 다소 꺾여 수면 아래로 스며들게 된다. 방정환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동양대학 아동미술과에 입학한다. 본격적인 어린이 운동을 위해 아동미술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2년 뒤 고국으로 돌아와 천도교에서 정식으로 소년회를 조직한다. 그 소년회는 문예 · 체육 등의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정서와 건강과 민족적 자각을 일깨우기 위해 조직이었다.

당시 어린이에 대한 인격 모독을 안타깝게 여기던 방정환은 전국을 순회하며 어린이 인격 존중 강연을 한다. 이때 ‘어린이’라는 말은 방정환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1923년 3월 1일에는 월간〈어린이〉잡지 창간, 동경에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했다. 이 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해 기념식을 가졌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어린이 단체가 색동회다.

그리고 70년 후인 1993년 3월 1일 당시 대구아동회 정휘창 동화작가, 경북아동문학회 김상문 동시인, 곽홍란 동화구연가 3인이 수성구 시지 서린교육원(곽홍란 원장)에서 색동회 지역어린이 운동에 대한 난제를 논의하고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대구·경북지역 색동회의 태동이었다. 지역의 뜻있는 아동문학가들(경북아동문학회)이 어린이 사랑 운동을 펼쳤지만 자금난으로 운영하지 않던 ‘어린이 동화·동요 한마당’이 1994년, 색동회 대구회원의 활동으로 다시 재공연되면서 40년을 훌쩍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정환과 색동회가 ‘어린이’와 ‘동화구연’에 주목하고 있음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의미가 숨어있다. 지금 비록 출산율 저조로 나라의 존폐 위기에도 어린이 사랑 운동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가 우리의 희망이듯, 나라를 살리는 일이 생명사랑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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