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장
우리 사회는 노인인구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로 ‘치매’라는 큰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2024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 995만여 명 중 추정 치매 환자는 91만여 명으로, 유병률은 9.15%에 달한다. 60세 이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치매를 꼽았다는 중앙치매센터의 조사도 있다. 이 두려움 속에는 스스로와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절망감, 그리고 가족에게 짐이 되고 내가 살던 곳에서 낯선 시설이나 병원으로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닐까 한다. 이는 치매환자에 돌봄과 삶의 질을 둘러싼 사회적 부담과 질문을 의미한다.

우리는 치매라는 질환과 치매환자의 일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가. WHO의 치매 위험감소 권고나 의학·공중보건 연구자들은 뇌세포의 퇴화가 주된 원인이지만, 뇌는 남아있는 신경세포들로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손상된 기능을 보완하는 회복력을 지니고 있으며, 조기진단, 규칙적 신체활동, 두뇌 활동, 사회적 교류, 그리고 균형 잡힌 식단과 같은 적극적인 관리로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기여한다고 하며 이는 ‘포기’가 아니라 ‘함께 관리하며 살아내기’로 일정 수준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개개인과 가족의 노력만으로 지켜내기에는 너무나 큰 한계가 있다. ‘간병 지옥’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치매 노인 돌봄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2024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노인 학대 사례 7천167건 중 치매 어르신과 관련된 학대가 1천721건(24%)에 달하며, 이 중 61%인 1천050건이 가정 내에서 발생했다.

치매진단검사를 받는 것 조차 거부하고 화를 내는 노인, 내 가족이니 끝까지 보살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 밤낮없는 돌봄에 이제는 지쳐 무너져 내리는 가족을 만나게 된다. “홀로 간병 부담에 치매 아내를 살해한 80대 남편”, “치매 형을 10년간 간병하던 60대 동생이 형을 살해”와 같은 충격적인 뉴스는 이 모든 책임과 고통을 여전히 개인과 가족에게만 전가할 때 어떤 참담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치매노인과 가족이 “내 집과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2008년 치매종합관리대책을 시작으로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에 이르기까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지고 왔다.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조기 발견 및 예방, 인프라 확충, 가족 지원 등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4차 계획에서는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돌봄으로의 전환 의지를 명확히 했다. 2026년 본격적으로 시행될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사업’은 이 계획을 현실화시키는 기본 체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요양·돌봄 관련 기관과 단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치매 환자와 가족, 지역사회 모든 시민의 깊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우리 동네’의 치매노인을 함께 돌보는 공동체적 시선과 실천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아동, 장애인, 여성, 노인 등 누구라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치매노인은 우리 자신의 미래 모습일 수 있음을 상기하면서 치매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대신 그 질환에 대해 먼저 공부하고, 치매노인이 겪고 있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불편함을 하나씩 개선해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오는 9월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이다.

이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책임감을 되새겨야 한다. 존엄한 삶을 살아갈 모든 노인은 어떤 이유로도 학대와 소외 속에 놓여서는 안되는 우리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치매노인 학대 예방은 단순히 법과 제도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견고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민들이 ‘우리 동네’ 노인을 따뜻한 마음과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를 지지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모든 노인이 존엄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진정한 복지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내가 살아오던 곳에서 안전하게 가족과 지역사회의 돌봄을 받으며 삶을 이어가는 것”, 이는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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