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이 전해 주는 말은 다 진실일까? 만약 진실이라면 수 천년 세월의 흔적을 감안한다면 이 세상 하늘은 지식인들의 이름으로 가득 찰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지식인이 전해 주는 말이 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이 중요한 이유는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통치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지만 서민들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비판 정신 때문이 아닐까 한다.

때로는 그 시대의 지식인을 어용(御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용’이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는데, 이는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지식 활동을 하기보다는 권력의 이해관계에 봉사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본래 비판적 성찰이라는 책무를 지니지만, 이를 포기하거나 약화시키면서 권력의 정책과 정치 행위를 옹호할 때 비판의 대상이 된다. 또한 시대적 담론을 왜곡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거나 특정 가치를 절대화 하는 경우도 지탄을 받는다.

조안 로빈슨 여사다. 그녀는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20세기 중반에 경제학 이론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녀는 1964년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에 대해 인상적인 발언을 남겼다. 그녀는 북한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한국의 기적>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의 성공은 ‘국민적 자부심에 대한 한국인들의 강렬한 집중’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김일성을 ‘독재자’라기 보다는 ‘메시아’에 가깝다고 표현한 바 있다. 또한 한국 분단에 대해서는 “남한을 흡수하여 사회주의화’ 함으로써 언젠가라도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녀의 발언은 동서냉전 시기에 서방 진영의 일방적인 담론에 맞선 제3세계의 신생 독립국에서 자주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그 당시 유럽 지성들은 전체주의적 경향을 띄고 있는 스탈린주의에 대해 일탈이라고 옹호할 정도로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을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미화한 그녀의 발언은 서구 지식인이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냉전시대에 서구 좌파 지식인들이 왜곡된 정보 속에서 전체주의 체제를 긍정한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1981년 저술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미국과 남한의 책임론을 강조하며, “6.25전쟁은 남침이 아니며, 미국의 사주를 받은 한국이 북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남침설에 반박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94년 러시아 정부가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외교문서 300여 종을 한국에 제공됐다. 그동안 봉인됐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6·25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는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커밍스는 30년 후인 2013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고 자신의 이전 주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는 “한국이 북침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북한의 선제 공격을 통해 전쟁이 발발했다는 기존 사관을 존중하게 된 것이며, 북한이 남침했다는 사실에 더 이상 이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공산주의가 “파시즘에 맞선 진보의 깃발”처럼 여겼다. 이들은 좌파적 인도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공동체 형성을 위한 폭력도 정당화했다. 이처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에 우호적인 평가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전체주의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한 결과를 낳았다.

브루스 커밍스는 자신의 오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명성을 얻고 있는 지식인으로서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54년 소련을 방문한 뒤, 철저하게 은폐되고 선전·선동을 위해 꾸며진 모습만을 보고서 “소련에는 완벽한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명성에 비하면 사소한 흠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용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체주의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정치적 도구로서 이른바 ‘좌표 찍기’를 통해 폭력을 행사한다. ‘밀정’, ‘사쿠라’, ‘수박’, ‘미투’와 같은 낙인이 주홍글씨처럼 붙는 순간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좌표가 찍히면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들이 주도하는 변화에 쉽게 반발하기 어려워진다.

일부 지식인들 역시 ‘극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면 시대의 공론장을 왜곡하고 있다.그 결과 7080년대의 낡은 망령이 되살아났지만, 동시에 분칠한 어용 지식인들의 실체가 들어났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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