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모든 것이 빨라지는 세상. 가끔은 느림이 좋다고 외치는 카우보이 교수다.

며칠 전에 방송 출연 때문에 잠시 서울에 다녀왔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마지막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모처럼 찾은 서울 홍대 앞은 나에겐 특별한 공간이다. 당시 홍대 학교 앞 골목은 가난한 선후배 작가들의 아지트였고 좀 더 깊은 골목길 옆 모퉁이 국수집은 주머니가 가벼운 화가들의 단골집이었다.

와우~!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선후배들이 모여서 작업하던 공간은 화려한 엑세사리 가게로 바뀌었고 모퉁이 국수집은 이름 있는 커피숍으로 바뀌었다. 드문드문 가게가 있던 후미진 안쪽 골목길까지 모두 상가로 덮혀 화려한 불빛 조명에 진짜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졸지에 필자는 한순간 시골 촌놈이 되었다. 대학 캠퍼스의 속도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던 나의 몸과 뇌는 엄청나게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의 환경에 번 아웃이 온 듯 어지러웠다.

방송 후 방송국의 작가 한분이 저를 붙들고 자신의 하소연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자겠다는 하소연. 빠른 생활환경과 조직의 경쟁문화가 가져다 준 대표적인 피해사례였다. 빠른 생활의 패턴이 가져다주는 긴장이 우리들의 몸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한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참 오래된 몸의 기억이다.

학교로 가는 초입 모퉁이 길목에 파란 대문이 달린 단독주택이 있었다. 그곳에 지나다닐 때마다 어린 필자는 매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유는 지금 봐도 무섭다고 생각이드는 불독 개 한 마리가 딱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필자가 어릴 때는 애완견의 의미보다 도둑을 쫓아주고 집을 지켜주는 보디가드 역할로 개들을 많이 키웠다. 당연히 그 역할에 충실한 개를 찾다보니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개중에서 가장 인상이 험하게 생겼고 성깔 또한 한 성질 한다는 미안하지만 불독견을 경쟁적으로 키웠다. 아무튼 그 불독은 타협이란 게 없없다. 누구든 지나가면 무조건 짖고 보는 막가파 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건 그 개는 집 안쪽에 매여 있어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 그 개가 짖는 소리는 매우 공포스러웠다. 상상해보라 어린아이 크기의 불독견이 침을 흘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짖는다고. 얼마나 무서웠겠나!

암튼, 어린 필자가 지나갈 때 마다 파란 대문 철문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이빨을 드러내며 짖는데 그래서 하루는 마음먹고 돌을 철문에다 냅다 던지고 도망을 쳤다. 소심한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었던 셈이다. 다음 날에도 호기롭게 지나가는데 그 날도 예외 없이 또 그 개가 짖길래 이번엔 아예 발로 문짝을 걷어찼다. 아뿔사 그 땐 몰랐다. 그 파란 대문이 살짝 열려있었다는 사실을. 오~ 마이 갓! 마당에서 고삐가 풀린 개는 저를 보자말자 열린 대문을 넘어 달려드는데 그 때 나는 완전히 얼음이 되었다.

심장은 북을 미친 듯이 두들기듯 쿵쾅거렸고 눈은 놀란 토끼눈처럼 확장 되었다, 온 몸에 근육은 실룩거렸으며 나머지 부수적인 내 모든 장기는 일체 스톱되었다. 아드레날린의 과다분비로 인한 완벽한 교감신경의 항진상태였고 몸은 최고로 긴장된 전쟁상태였다. 결과가 궁금하시다고요? 물론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의 두 발로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네발 달린 성견을 당할 순 없었겠죠? 저의 연약한 오른쪽 종아리를 그 개의 이빨자국과 맞바꾸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이빨 드러내는 개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아무튼 긴장과 위급함이 가져다주는 긴장상태는 우리 몸을 이렇게 개에게 쫓겨 도망가는 비상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좋은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렇게 빠른 시대환경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힐링 방법 중 하나가 역설적으로 ‘느림의 미학’이다. 느림은 아드레날린 때문에 흥분된 내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최고의 비상처방이다.

느림은 몸의 이완은 물론 마음과 뇌까지 이완시켜준다. 빵빵해진 풍선에 살짝 바람을 빼주는 가장 빠른 치유법이다. 눈부시도록 맑은 하늘은 눈으로 정화하고 시원한 바람을 오감으로 느끼며 진정한 느림을 몸으로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들 맹견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웃음.

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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