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정치부 차장

국민의힘이 6년여 만에 광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입을 모아 “야당 탄압”, “독재 정치”라고 소리를 높였다. 동대구역에 빼곡히 모인 당원과 지지자들은 열광했고 환호했다.

집회 시작 이전부터 동대구역 일대에서는 일부 지지자들이 저마다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시민들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중국에 나라를 팔아 넘긴다’,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등등이 적혀 있었다. 성조기를 흔들며 보수 우파 만세를 외치는 일부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정치적 이념의 결사체인 정당과 신이나 절대자를 향한 신념으로 뭉친 종교가 오버랩되며 자연스레 선교 활동이 연상됐다.

대학 시절 ‘도를 아십니까’ 혹은 새로운 종교나 기도시설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선교에 의문이 들어 한 선배에게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사람들이 가득 타 있는 버스에 폭탄이 설치된 사실을 너만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폭탄이 장착된 버스에서 모두를 구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거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풍전등화 위기에 놓여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당 실세였던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통일교와의 유착 혐의로 구속됐고 통일교 신도들의 집단 입당 의혹으로 헌법상 정교분리 시비까지 불거졌다. 헌법을 기반한 근대국가의 원칙인 ‘정교분리’를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역사상 정교일치 사회는 인간의 자유가 가장 억압받았던 시대였으니 여당이 주장하는 내란 옹호에 이어 공당으로서의 존립 위기까지 더해진 것이다.

김건희 특검은 압수수색을 통해 교인과 당원 명부를 대조한 끝에 통일교 신도로 추정되는 국민의힘 당원 11만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고 했다.

당은 떠났지만 직설적인 발언이 주무기인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통일교 11만, 신천지 10만, 전광훈 세력 등을 합치면 유사종교집단 교주들에게 지배 당한 정당이나 다름없다”며 교주 지령에 따라 투표율이 거의 100%에 가까운 이들에 따라 지도부와 대선 후보가 결정될 수 있고 곧 보수 정당의 자멸이라고 표현했다.

장동혁 대표가 이에 대해 ‘종교의 자유’라고 하자 그는 다시 “특정정당 교주 명령으로 집단으로 잠입해 경선 결과를 조작하는 행위는 신종 범죄”라며 “정교분리 원칙의 헌법에 반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정의했다.

조직적인 힘과 거래의 개입을 뒷받침할 증거나 정황들이 터져 나오면서 현재까지는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통계적 개연성은 정교유착 의혹을 떨쳐내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

대규모 조직력과 자금 동원이 가능한 종교계와 정계의 유착 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암암리에 배경이 돼 주고 이권을 챙기는 수많은 거래가 오갔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당 지도부와의 거래 의혹이 핵심이 된 상황에서 이제껏 겪었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온다.

보수 진영의 가치는 법치주의 실현과 헌법 수호라는 점에서 국민의힘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겉으로는 헌법 수호를 외치면서 종교계와 결탁해 청탁을 받고 각종 이권을 거래한 의혹이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위태롭다. 보수 정당으로서 명분을 잃은 국민의힘이 대여 투쟁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대국민 공감을 얻을지 우려스럽다.

지난 동대구역 광장에서 국민의힘은 미국 공화당 열풍을 의미하는 레드웨이브 퍼포먼스를 보이며 ‘국민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하자’는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띄웠다. 참석했던 국힘 의원들은 이를 무대에서 지켜봤다.

이번 장외 집회를 두고도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기대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 대선 패배 이후 내부적으로도 쇄신의 동력은 잃고 강한 워딩 속 ‘스피커’로만 남은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자 ‘야당 탄압’이라며 거리로 뛰쳐나갔다는 비판이 따랐다. 대국민 공감보다 지지층 결집만을 위한 행보 이후 선거에서 민심의 철퇴를 맞았던 황교안 전 대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야말로 지리한 기시감마저 들게 하는 ‘쇄신’이라는 단어가 국민의힘 스스로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절실해져야 하는 순간이다. 절연해야 할 것은 단호하게 끊어내고 당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지연 정치부 차장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