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국 칼럼니스트

3주 가까이 독일과 이탈리아 몇몇 도시를 다녀왔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베를린은 나에게 가장 완벽한 도시였다. 역설적이게도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된 덕분(?)에 오히려 풍성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한 접근성도 그 어느 도시보다 쉽고 간결해 낯선 이방인인 나도 편히 즐길 수 있었다. 베를린 필을 비롯한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그리고 많은 전시를 보았다.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역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아름답게 균형 잡혀 있었다. 여러 역사적 현장과 전시는 둘러보았지만 일정상 최고 수준의 두 도시 오케스트라는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가능하다면 시즌 중 어느 곳에서든 한 달 살기를 하며 세 도시의 공연을 두루 챙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라이프치히에서는 지인이 운전하는 차로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 때 택했던 것과 비슷한 경로인, 뉘른베르크와 뮌헨 그리고 인스부르크와 볼차노를 거쳐서 ‘아르코’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약 240여 년 전 괴테가 지나갔을 산하를 바라보며 그때를 상상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대표적 휴양지인 가르다 호수 북쪽 끝 언저리에 있는 이 도시는 암벽등반의 성지로 불린다. 인구 2만도 안 되는 작은 규모지만 모든 것이 균형 잡힌 살기 좋은 곳이다. 여기서 며칠간 꿈같은 이탈리아 시골(?)생활을 즐기고 기차로 밀라노를 찾았다. 정확히 28년 전 유학생활을 마치고 떠난 후 처음 돌아가는 길이었다. 유럽이 그렇듯 도심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반면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세 지역 정도에 ‘자하 하디드’를 비롯한 세계적 건축가들의 작품이 들어서서 스카이라인이 변한 정도였다.

평소와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몇 번의 약속된 만남과 또 몇 번의 우연한 만남이 이어졌다. 사실 해외에서 지인을 뜻하지 않게 볼 확률은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먼 나라에서의 이런 만남은 일종의 청량제와 같다. 환승지인 프랑크푸르트 공항 내 탑승구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나의 앞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지나갔다. 하노버에 공연차 가는 대구의 연주자들이었다. 이들 중 몇몇은 내가 평소 늘 마음으로 응원하는 친구들이니 더 반가울 수밖에---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보기위해 극장을 들어서려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대학 때 나에게 1년 정도 배운, 케미가 좋았던 제자다. 이 극장 합창단 정 단원으로 14년 째 근무 중이란다. 며칠 뒤 다시 만나 점심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도 후배를 만났다. 옛날 함께 유학 생활하던 동문인데 이제는 그곳에서 한국인 사업가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외국에서 코로나 시국도 이겨내고 훌륭하게 가정을 이루고 있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밀라노를 방문한 이유는 두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과거 유학 생활 중 각별히 가깝게 지내던 한 가족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서로 친했고 같은 나이의 아내들끼리도 각별했다. 그리고 학교는 다르지만 나이가 나보다 어린 그 집 가장과 나는 형제의 정을 나누며 지냈었다. 여유가 없는 유학생활이었지만 서로 마음으로 따뜻이 품어주던 사이였다. 그 가족은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아이들도 각기 영국유학을 거쳐 밀라노에서 전문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는 사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언제나 서로에 대한 그리움은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난 후의 재회가 바로 어제의 일 같은데 강산이 세 번 가까이 바뀌는 시간이 지나갔다니, 큰 반가움과 함께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세월에 슬프기도 했다.

우리의 이탈리아 생활을 정말 행복하게 해준 가족이 있다. 바로 옆집의 은행원 아저씨와 가정주부 그리고 두 아들로 이루어진 이탈리아인 가정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중산층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의 삶은 위대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들은 진심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 주었으며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를 대했다. 이들 덕분에 우리가족은 언제 돌아봐도 따뜻한 그리움, 풍요로운 한 시절의 서정을 가슴깊이 간직할 수 있다. 서로가 그리웠던 우리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해후를 했다. 늘 미안함이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나는 이번 방문으로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더 큰 과제가 생긴 것 같다. 팔십 중반에 접어든 노부부와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았고 그것을 위한 시간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 같아서다.

우연이든, 약속된 만남이든 이것으로 인해서 이번 여행은 큰 의미가 있었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보고 싶은 사람 부지런히 만나고 마음껏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형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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