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처형당해야 할지 혼란스런 상황에서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고 뒤따라 시장과 상인, 법률가 등 고위층 인사들이 자진해서 희생하겠다고 나서자 이에 감동한 에드워드 3세가 이들을 모두 살려줬다. 칼레의 모든 시민들도 당연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리더의 진정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를 보여주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진정한 상징으로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 용어는 프랑스어로 ‘귀족(노블리스)의 의무(오블리주)’라는 뜻으로 지위와 권력을 가진 자는 그만큼의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단순한 지위나 명예가 아니라 그에 걸맞은 품격있는 행동과 희생을 요구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노블리스’는 그 특권에 따르는 ‘오블리주’, 즉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근현대에도 이를 실천해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예는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조지 6세와 왕비는 독일의 무차별 공습에도 런던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고통을 함께 나눴고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명문가 출신인데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강조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말할 것도 없다.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운동으로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독려하며 거대한 기부 문화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400년 넘게 부를 이어온 경주 최부자 집안을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부른다.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백성들을 구제했고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 가훈을 대대로 지키며 진정한 나눔과 상생을 실천했다.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는 사후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들에게는 유산 한 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복수국적을 가진 이재용 삼성 회장의 장남 지호씨가 해군에 입대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깊은 울림을 줬다.
우리 주변에도 부를 사회에 환원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거의 귀족 계급은 없어졌지만 현대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가진 지도층에게 이 정신이 더 요구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지위를 가진 정치권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거의 실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잊을만 하면 드러나는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입시 특혜, 각종 부정과 비리에도 제대로 책임지는 정치인을 보기가 힘들다. 특권은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행태로 국민들의 마음에 생채기만 내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 정작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책에는 소극적이다. 선거철에만 ‘국민을 위한 봉사’ ‘공복’을 외치지만 임기 내내 사익과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면서 정치 불신만 자초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귀족은 위기에서 앞장서 싸웠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은 위기는 국민에게 떠넘기고 자신들만 안전지대에 머무른다는 비난만 받고 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은 그 자체로 무거운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들이 의무를 실천하지 않으면 사회적 불신과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 자명하다.
가진 자들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 그들이 가진 특권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가진 자들이 겸손하고 의무를 다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양극화와 대립, 분열을 넘어 진정한 화합으로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임상현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