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시선은 늘 화려한 곳, 당장 표로 연결될 수 있는 전시성 행정에만 머물고 있다. 성대한 기공식, 그럴듯한 선거 공약처럼 눈에 보이는 업적에만 열을 올린다. 땅속에 묻힌 낡은 관로를 파헤치는 묵묵한 노력은 그들에게 아무런 정치적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 결과, 도시의 근간을 다지는 행정가 형 인물은 외면당하고, 대구의 행정은 늘 피상적인 처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은 공염불이 되어 시민들에게 깊은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 씁쓸한 전철을 다시는 밟아서는 안 된다.
도시의 생명력은 어쩌면 땅속의 혈관, 즉 관로의 건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 도시라면 마실 물을 공급하는 상수관, 오물을 배출하는 하수관, 생활용수를 처리하는 배수관, 정화조 거친 물을 보내는 오수관, 그리고 도시가스관까지 체계적으로 분리된 관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구의 오래된 도심은 오수와 배수가 뒤섞여 흐르는 구조적인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2021년 통계는 이 충격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구의 배수관과 오수관의 분리화율은 겨우 43.9%. 전국 광역시 평균인 64%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전직 시장은 일부 공사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구시민을 위협하는 도시의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이 시한폭탄은 매년 여름,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마다 터져 나온다. 분리되지 않은 관로에서 역류하는 오물은 도심을 뒤덮고, 그 악취는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비만 오면 냄새가 올라온다.”는 시민들의 하소연이 해를 거듭할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는 도시의 심장부가 썩어가고 있다는 뼈아픈 증거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대구는 ‘뜨거운 도시’에 이어 ‘악취의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찍히게 될지도 모른다. 도시의 혈관이 깨끗하고 건강해야만, 시민의 삶이 쾌적하고, 나아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 오고 싶은 도시, 투자하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이 사업에 드는 예산은 지방비 30%, 국비 70%의 구조이기 때문에 행정을 아는 리더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행정은 결코 정치인의 허황된 공약에 종속되는 도구가 아니다. 행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삶을 살피고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능력이다. 물론 행정가 역시 정치력이 필요하다. 도시발전을 위한 거대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이다. 화려한 언변으로 표심을 얻는 데 능숙한 정치가형 행정가가 아니라,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데 능통한 ‘행정가형 정치인’이 절실한 시점이다. 땅위의 허울뿐인 구호가 아닌, 땅 밑의 묵묵한 행정에 집중할 줄 아는 리더만이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 수 있다.
도시의 품격은 화려한 언변이나 사이다 발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땅 밑의 혈관을 깨끗이 관리하고, 보이지 않는 곳의 문제를 찾아 해결할 때 비로소 지켜지는 것이다. 정치가 일정 시점 동안 사람을 속이고 당시를 지배할지 몰라도, 행정의 손길은 여러 세대를 지탱한다. 행정이 등한시되는 순간, 시민은 결국 오물 속에 산다. 대구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더 나은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보이지 않는 부문에서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