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를 바꾸었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 왔다. 딱, 2달이 지났다. 그전에도 주택살이 경험이 있어 무섭지는 않았다. 몸의 경험이 그저 놀라울 다름이다. 2달 만에 몸의 체질이 완벽하게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나이 먹고 하는 주택 살이는 고생을 부르는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나는 나이들수록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지 근육부자, 신체부자, 정신부자, 영혼부자로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당연히 역설의 미학이다. 단, 게으른 사람들에겐 절대 강추하지 않는다.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이다. 작은 마을이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어느 정도 집정리가 된 후 부터 지금까지 노동은 원 없이 했다. 올여름이 또 얼마나 지독하게 더웠나? 한 달 가까이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저녁 8시까지 노동을 하고나니 마지막 날에는 번 아웃까지 왔다. 물론 지금은 모두 회복되었지만 돌아보니 집 한 채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셈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노동이 절대 즐겁지 않다는 걸 느낄거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노동의 즐거움은 지독한 몸의 한계를 극복한 다음에 나온다는 사실. 내 손과 땀과 시간과 맞바꾼 아름다운 공간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지붕을 스치는 바람 한 자락, 나무 곁에 피어나는 풀 한포기, 지붕에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 비올 때 느끼는 만 가지 감성은 사랑스러움의 극치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엄지와 검지만으로 풀을 뽑는 작은 울력만으로도 충분히 노동을 즐긴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더운 여름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소서팔사消暑八事>에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등 선배들의 한량생활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논에 물길 만들기, 장작패기 등 아주 고강도의 노동을 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후 시원한 등목과 원두막에서 수박 먹기는 한여름 건강한 울력 후 만나는 기쁨으로 일반적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기쁨이라고 하셨다. 이런 즐거움을 심리학에서는 '등가교환의 법칙'과 '의미치료'로 해석된다. 다산 선생님의 지혜로움은 200년 후에 나올 긍정심리와 긍정혁명의 또 다른 지침이었으니 참 절묘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정신적 구루였던 미세 세각의 달인, 타악기 연주자 흑우 김대환 선생께서는 지독한 몸의 집중과 몰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번민과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디 그뿐인가?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집중과 몰입이 스트레스해소는 물론이고 트라우마를 가장 빨리 해소시키는 최고의 치료법이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 다산과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공통점은 두 분 모두 개인적 시련을 바탕으로 집중과 몰입이론을 만드셨던 분이었다. 또한 그 고통의 시간을 다산은 저술의 몰입으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긍정혁명의 이론으로 극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리적 불안정과 육체적 고통은 우리들의 모든 일상적 생활을 파괴한다. 끝없이 떠오르는 트라우마의 순간. 복잡하고 괴로운 인적갈등.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끊어낼 수 없는 현실의 모든 번민과 갈등은 나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그 모든 걸 한 번에 끊어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집중과 몰입이론'이었던 셈이다.
다산의 520여권의 저술은 강진의 유배에서 완성되었고 김정희의 전설같은 추사체의 완성도 제주 9년 유배가 만든 몰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런 모든 몰입의 경지를 '플로우(Flow)'라고 부른다. 플로우의 경험은 단순한 즐거움의 한계를 뛰어넘고 다양한 우리들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역설했다.
더욱 놀랍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집중과 몰입이 자신에게 기쁨을 준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것은 '삶의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고 '생존의 이유'를 찾았다는 사실이므로 잃어버렸던 벗어놓았던 갑옷을 다시 입고 전열을 정비한다는 뜻이된다. 여기에서 출발한 의지는 공포와 두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동력이 되면서 학습의 성취도는 물론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 내면이 단단해 진다는 뜻이다. 여기에 행복감과 정서적 안녕까지 더해지면서 문제해결능력의 증가와 창의력까지 촉진시킬 수 있으니 다산과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긍정혁명이 허황된 과장이 아니었다.
삶의 의욕이 떨어졌나요? 밤이 두렵습니까? 그럼 당장 목표를 정하고 몸으로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미션을 수행하시죠. 노동의 미학이 여러분을 자유롭게 만들어줄 겁니다.
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