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 시인

매미들의 무성한 코러스가 미루나무 우듬지를 정점으로 슬쩍 꼬리지느러미를 아래로 비틀자 태양의 시계추가 째깍 화장대 서랍에서 황갈색 색조의 립스틱을 꺼내 물었다

일찍이 동장군과 그 잔당들을 일거에 제압하고 온누리에 초록의 시대를 선포했던 혁명군의 첨병 산수유가 이젠 소임을 다했노라 사직서를 낸 게 바로 엊그제

천문에 밝은 혁명의 축하사절단이자 용병을 자처한 남국의 제비들도 하나둘 처음의 전선으로 돌아와 변방의 동료들에게 귀국의 통문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엽록의 수레바퀴를 멈춰야 할 때

햇살의 혓바닥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그만큼 길어진 귓바퀴를 굴려 동구에 이르면 먼 들녘으로부터 아장아장 걸어오는 씨앗들의 작은 옹알이, 그 어여쁜 것들을 위해 오늘부터 요람을 짜려니 오후엔 뒤꼍 대밭에 올라 오죽 몇 그루는 베어야겠다

◇장문석= 1990년 ‘한민족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잠든 아내 곁에서’, ‘아주 오래된 흔적’, ‘꽃 찾으러 간다’, ‘내 사랑 도미니카’, ‘천마를 찾아서’, ‘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시집 ‘동물원 내 친구’, 시산문집 ‘시가 있는 내 고향 버들고지’, ‘인생은 닻이 아니라 돛이다’, ‘사랑은 서로를 건너는 것이다’.

<해설> 시인은 날씨에 민감하다. 변하는 절기에 따라 함께 시인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개인사적인 문제 이긴 하지만 사물의 대조 대비를 통해서 행위를 기술하고 있어 시의 맛이 웅숭깊다. 시의 첫 연 첫 문장이 주는 입추의 풍경이 매미, 미루나무 우듬지, 꼬리지느러미, 태양의 시계추, 화장대 서랍, 황갈색 립스틱으로 건너가는 연상의 나열은 “꺼내 물었다”는 행위를 낳기 위한 여러 치열한 과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진술로 알려주고 있다. “사직서를 낸 게 바로 엊그제”,“요람을 짜려니 오후엔 뒤꼍 대밭에 올라 오죽 몇 그루는 베어야겠다”는 다짐까지, 시인의 삶과 밀착된 입추에 의미를 보탠 시로 읽힌다. 문득 40년 전쯤에 시인의 결혼식에 후배인 내가 참석했었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계실지, 그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지면으로 불쑥 만나게 되니, 그간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또한 반가운 마음이 물씬 마음의 바닥을 흔든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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