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체육전담교사를 맡았습니다. 체육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체육하면서 시 써 볼래? 그러자 당연히 그걸 어떻게 써요?라는 물음이 돌아왔습니다. 체육 시간에 시를 쓰는 일은 거의 하지 않죠. 아마 그런 수업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남들이 안하기에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간단해. 체육 수업 끝나고 기억에 남는 일, 뭔가 써보고 싶은 그런 일이 있으면 그냥 시로 쓰면 되는 거야. 잘쓰면 간식 줄게.” 애들이 강아지도 아닌데 또 이것보다 잘 먹히는 것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한번 해봤습니다. 이렇게 해도 못 써오면 뭐 할 수 없지,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시쓰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체육 수업 시간에 따로 시쓰기를 가르칠 시간은 없으니까 달리 방법도 없었습니다. 체육 수업에 체육 말고 다른 걸 할 수는 없으니 현실적으로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 말을 알아듣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눈을 빛내는, 조금 더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 나타나주기를 내심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첫 작품을 써왔습니다. 공책을 죽 찢은 종이에 괴발개발이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닙니다. 작품이 있는 게 어디인가! 일단 아이들과 돌려읽었습니다.



별게 다 큰일

체육 선생님은 뭐만 하면 큰일이란다/달리기 기록이 안 나오면/아, 큰일인데//피구하다가 공이 빠져도/아, 큰일이야//멀리뛰기하다가 실수해도/아, 큰일이다//그게 뭐가 큰일이지?/내가 보기엔 정말 작은일이구만



체육 시간 교사의 말버릇을 자세히 관찰하여 자기 나름의 표현으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긴. 큰일도 아닌데 선생님은 왜 자꾸 큰일이라고 할까요, 문제네요. 그리고 과연, 이번에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써온다니까요.

“어때요? 재미있어? 이렇게 쓸 수 있겠지?”

첫 발자국이 떼어졌습니다. 뭐든 처음이 제일 중요하고 어렵지요. 그 뒤부터 작품이 우후죽순입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본인의 희망에 의해서만 했습니다. 절대로 강요가 되면 안 되니까 진짜로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학생만 함께 했습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체육 활동을 시로 쓰면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체육도 얼마든지 다채롭고 재미있는 몸공부 시간이기에 조금 더 들여다보니 쓸거리가 진짜 많았습니다. 체력평가활동, 운동회 같은 체육대회, 스포츠리그 등 체육활동 외에 생존수영시간에도 에피소드가 만들어지고 일상의 평범한 수업에서도 못다한 이야기가 시로 빚어졌습니다. 체육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작품이 되어 문학으로 형상화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또 그러다보니 이제 시가 체육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체험학습 써도 돼요? 급식 써도 돼요? 다른 수업은요? 친구랑 있었던 일은요? 이런 게 바로 어려운 말로 스펙트럼의 확장입니다.

뭐든 좋지, 쓰기만 써라. 쓰는데 무슨 제한이 있겠으며 부작용이 있겠냐, 안 쓰는 것보다야 무조건 낫지. 그러니까 작품이 착착 쌓여가고 늘어나면서 작품 수준도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시를 쓰는 선생님이니 학생들이 써온 작품에 최대한 피드백해주고 함께 고쳐 나가기를 반복하며 학생은 자연스럽게 글솜씨가 늘게 되었습니다. 오늘 체육 뭐 해요? 하던 아이들이 오늘 체육 뭐 쓸까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각종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아오고 합니다.

IB 학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학생 중심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학생의 주도성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주인 정신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체육에 하고 싶은 글 썼고 그것들이 책이 되면 내 작품이 내 책이 되니까 주인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제가 제 생각으로 제 아이디어를 내서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했고 그것을 따라준 학생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언제 어디서나 시쓰기를 실천하고 가르칠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주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그것이 실현되었습니다.

올초에 ‘풀꽃’의 국민시인 나태주 시인을 만나서 들은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시를 쓸 수 있을 때가 따로 없어요. 언제든 생각이 나면 바로 써야 해. 뭔가 마음이 울컥하면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된 거야. 그때 그냥 쓰는 거야.”

그 말씀을 되새기며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해줬습니다.

“시라는 거 별거 없어. 그냥 체육 재미있게 하다가 뭐라도 어떤 순간이 생기면 어? 이거 뭐가 되는 거 아니야? 그럴 때 그냥 쓰면 돼.”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고 조금더 나아가는 꿀팁도 있지만 그것까진 영업비밀이고요, 지금도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매일매일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교사인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공책 찢은 종이에 적어온 구슬들을 하나씩 꿰어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써오면 간식 주고요. 이제 얼마 후면 그렇게 모은 작품들이 우리들의 시집으로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쓰고 그려서 모은 구슬이 실에 꿰어져 보배가 될 때 우리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IB 별거 있나요? 하고 싶은 거 찾아서 열심히 해서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으면 그것이 IB 교육입니다. 스스로 재미있게 열심히 했습니다.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한 작가들입니다. 곧 나눌 시간을 기다립니다.

 
 


대구월배초등학교 교사 김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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