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추진에는 여러 긍정적 논리가 있다. 무엇보다 만 60세 정년 이후부터 국민연금 수급 시점(현 63세)까지 발생하는 소득 공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또 생산연령인구가 2020년 이후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숙련된 고령 인력을 경제의 지속 가능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숙련된 기술인력의 노하우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있다. 바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 현실이다. 통계청의 2024년 고령층 조사에 따르면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절반 이상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했다. 평균 실제 퇴직 연령은 53.2세로 법정 정년보다 무려 7년이나 빠르다. 즉, 정년 연장이 논의되기 전에 이미 많은 근로자는 50대 초반에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용의 안정성 문제이자, 정년 논의의 현실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정년 연장은 단순히 법률상의 나이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와 기업 문화 전반의 개혁을 요구한다. 대기업 중심의 정년제와 달리,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는 애초에 정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0명 중 4명은 계약직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60세가 되기 훨씬 이전에 일터를 떠난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이들에게 실질적 의미가 거의 없다. 법적 정년을 65세로 늘린다 해도, 실제로 그 나이까지 일할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제도는 공허하다.
또한 기업의 현실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정년을 5년 늘리는 것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하에서 최고임금자가 더 오래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청년층 신규 고용 여력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은 정년 연장을 고용 유지명령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임금체계 개편과 세대 간 일자리 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성과 중심 임금제나 직무급제(일의 내용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제도) 도입, 고령자 재고용 제도 등과 병행하지 않으면 기업의 저항은 커질 것이다. 일본이 정년을 65세로 올리면서도 기업이 고령 근로자를 계약직 형태로 전환해 운용할 수 있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도 단순한 연령 연장보다는 유연한 고용 설계와 평생직업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논의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의 정년 연장 논의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담론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애초에 정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년 연장이 아니라 일자리 유지이다.
청년층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청년 실업률은 OECD 평균을 웃돌고 있고, 구직 기간은 길어지고 있다. 일자리의 세대 갈등 구조가 정년 연장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이를 조정하지 못하면, 정년 연장은 세대 간 분열의 불씨로 변할 수 있다.
결국 정년 65세 시대의 핵심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노동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고령자는 능력에 맞는 일을 지속할 수 있고, 청년은 성장의 기회를 얻으며, 기업은 지속가능한 인력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니라, 실질 정년을 현실에 맞게 끌어올리는 것, 즉 실제로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정년 65세는 단지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업 문화, 임금 체계, 고용 안전망, 세대 연대라는 복합 과제가 놓여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연장해야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기회의 수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