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스트 APEC, 경북의 유산은 사람과 기억 속에 있다
박철호 한국관광공사/2025 APEC KOREA 자원봉사자

며칠 전 대구신문이 보도한 “경주, ‘포스트 APEC’ 관광 자산화 돌입” 기사를 읽으며 깊이 공감했다. 행사의 성공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감동과 의미를 시민과 관광객이 다시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 기사는 “부산의 누리마루처럼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APEC 기념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말이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그 현장에 있었기에, 그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낀다.지난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나는 경주에서 관광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대표단과 취재진이 경주를 찾았고, 불국사와 대릉원, 황리단길, 경주엑스포공원 등은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쳤다. 시민들은 낯선 손님들을 환영하며 따뜻한 미소로 화답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대의 무대처럼 움직였다. 그 현장에서 나는 “이 시간이 단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오래 남을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여러 번 느꼈다.

2025년 APEC은 경상북도의 저력을 보여준 세계적 행사였다. 그러나 진짜 유산은 화려한 회의의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을 잊지 않게 하는 기억의 장치에서 시작된다. 부산의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회의장이 아니라 ‘기념비적인 공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경북 역시 그런 상징을 가질 수 있다.

가장 많은 뉴스의 조명을 받은 곳은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였다. 세계 언론의 카메라가 일제히 서 있던 그 지점은 하루에도 수십 번 “Gyeongju, Gyeongsangbuk-do”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그 현장을 오가며, 경북이 세계 속에 새겨지는 그 순간을 직접 보았다.

만약 그 뉴스 앵글이 섰던 자리에 ‘APEC 포토 스팟’을 만들고, “이곳은 2025 APEC 정상회의 공식 촬영 지점입니다”라는 안내판 하나만 세운다면 어떨까. 큰 비용이 들지 않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그 한 장의 사진이 곧 도시의 스토리이고, 지역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기억의 매개가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황남빵이다. 경주의 대표적인 전통빵이 이번 APEC의 공식 지정 기념품으로 선정되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한 개의 빵이 외교의 상징이 되고, 지역의 손맛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야기가 하나만으로도 강력한 관광 자원이 된다. ‘정상들이 맛본 경주의 빵’, ‘세계 정상에게 선물된 경북의 맛’이라는 문구는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홍보 문장이다.

이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상징들이 모여, 경북의 APEC 유산을 더 깊고 넓게 확장시킬 수 있다.국립경주박물관이 한·미, 한·중 정상회담 관련 공간을 특별 공개 중인 것도 좋은 흐름이다. 정상들이 실제 사용한 테이블과 의자, 좌석 배치를 그대로 재현해 ‘역사적 외교 현장’을 시민이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시도를 경주에만 머물지 말고, 경상북도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당시 사용된 기록, 사진, 영상, 자원봉사자의 유니폼 등도 ‘경상북도 APEC 아카이브존’으로 보존한다면, 그 자체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콘텐츠가 될 것이다.

행사 기간 동안 약 250명의 자원봉사자가 통역, 교통, 관광 프로그램, 문화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나는 그 현장에서, 경북의 품격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친절이 외신이 언급한 “질서정연하고 따뜻한 도시”의 진짜 힘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는 것 또한 포스트 APEC의 중요한 자산화 작업이다.

이제 경북은 ‘행사를 잘 치른 지역’을 넘어, ‘기억을 잘 남기는 지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기억이 도민의 자부심이 되고, 관광객의 추억이 되며, 결국은 지역 브랜드의 핵심이 된다. 기억을 유산으로, 유산을 미래로 이어갈 때, 2025년 APEC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경상북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출발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박철호 한국관광공사/2025 APEC KOREA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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