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막걸리 ‘너디호프’ 개발
온도 조절·콜드브루 기법 활용
꿉꿉한 향 잡고 바질향은 살려
대한민국 주류대상 ‘대상’ 차지

◇‘먹튀’가 아니라 ‘성공’이다
지역에서 벤처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오래된 오해가 남아 있다.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창업한 청년이 매출을 내거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엑시트를 하면 흔히 “지원만 받고 떠난다”는 말이 뒤따른다. 지원을 받았으니 반드시 남아야 한다는 낡은 감정은 청년 창업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 관점은 스타트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에서 증명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고 이 과정의 종착점에는 엑시트가 자리한다. 가치가 검증되었기에 인수와 투자와 재도전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엑시트는 회피가 아니라 도전의 완성이다. 투자자에게는 자금 회수의 정당성을 마련해 주고 창업자에게는 다음 단계를 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한 명의 엑시트는 또 다른 열 명의 도전을 가능하게 만들고 지역 생태계에는 경험과 자본과 네트워크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남긴다. 반대로 성공을 의심하고 질투와 감정으로 반응한다면 지역에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지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하고 성공을 환영하며 재도전을 응원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는 조기 엑시트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 작은 규모라도 시장이 가치를 인정한 순간부터 선순환이 작동하며 창업자는 더 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투자자는 더 많은 자본을 공급한다. 경험이 검증된 창업자에게 투자금이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지역에서 한 번의 성공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곳은 다음 창업의 후보지가 된다. 지역의 성장은 결국 성공 경험을 얼마나 축적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러므로 지역 사회는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왜 떠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돌아오고, 어떻게 확장되는가”로 말이다. 지역의 창업·정착 생태계는 단순한 정착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험을 가진 창업자가 다시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 청년을 고용하며 시행착오의 비용을 줄여주는 순간 생태계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지역에는 더 많은 ‘성공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성취가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우리 지역에는 이 건강한 성공을 증명한 청년이 있다. 상주에서 자신만의 발효 철학으로 막걸리 브랜드를 론칭하고 전국적 시장 확장에 성공한 이승철 대표는, 스물여덟에 청춘의 주머니에 든 1천만 원을 들고 연고도 없는 상주로 내려와 ‘농촌살아보기’ 6개월로 기반을 닦고 2022년 법인을 세웠다. 2023년 첫 제품을 출시하고, 2024년 6월에는 1억 5천만 원 규모로 회사를 엑시트하며 창업 3년 만에 의미 있는 성장을 완성했다. 이제 그는 상주주조 대표가 아닌 팔레트 브루어리 대표로서 더 큰 도전을 준비 중이다.
◇바질 향으로 시장을 흔들다
지역 창업 생태계가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시장의 증거다. 청년 창업 지원사업의 수혜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 CEO가 만들어내는 경제의 흐름이다. 그 흐름은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제품과 재구매로 이어지는 신뢰 속에서 드러난다. 시장은 감동이 아니라 완성도를 통해 반응하고 브랜드는 그 경험을 통해 확장된다. 상주에서 발효 철학을 기반으로 막걸리 브랜드를 론칭하고 전국적 반응을 이끌어낸 바질 막걸리 ‘너디호프’는 그 증거다.
막걸리 특유의 꿉꿉한 향을 잡기 위해 발효 온도와 숙성 시간의 조합을 반복했고 산미의 균형을 설계하기 위해 유산균 배양까지 시도했다. 뜨거운 물에 바질을 우리면 향 성분이 무너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피에서 사용하는 콜드브루 기법을 응용했다. 이런 숨은 실험들은 결국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는 그 깊이를 향미로 증명했고 시장은 정확하게 반응했다. 그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수백 번의 시도와 피드백이 쌓이며 향과 산미는 점점 정교해졌다. 그는 지난 2년간 전국 박람회를 거의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하루 수백 명에게 시음을 제공했고 표정과 취향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한 번의 박람회에서 200병에서 많게는 500병을 소진할 만큼 공격적인 시장 검증이 이어졌다. “좋은 술은 연구실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향을 다듬을 때 살아납니다.”라는 말은 이 과정에서 나온 고백이다. 겉으로 드러난 한 모금 뒤에는 수없이 버려진 배치와 실패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축적된 실험과 데이터는 생산 현장의 변화를 이끌었다. 소비자의 선택이 반복되면서 실험은 제조로 제조는 체계로 발전했다. 발효통은 6대에서 30대로 늘었고 열효율이 높은 대형 증자기 도입으로 향미 붕괴를 최소화했다. 자동화 공정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향미의 균일성을 위해 공정 기록과 배치 관리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뛰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니라 숙련도를 보존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적 확장이다.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 잘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생산은 양이 아니라 품질의 반복입니다.”라는 한마디는 방향을 흔들리지 않게 한다. 숨은 노력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한 병의 향 뒤에는 폐기한 수많은 실험과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쌓여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향은 결국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다.
바질 향으로 시장을 흔든 이 실험은 전통주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상주 농산물이 현대적 향미와 결합하며 브랜드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지역 청년의 발효 철학은 전국 시장에서 검증받았다.
농민학교서 증류주 제조 ‘열공’
의성서 공유 양조장 조성 추진
전통의 확장 위해 쌀맥주 개발
지역 농산물의 새 가능성 증명
◇경북 전역을 누비며 술의 길을 배우고 있는 이승철 대표
바질 향으로 시장을 뒤흔든 성공 이후 이승철 대표의 시선은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의 검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는 더 깊은 술을 만들기 위해 경북 전역을 무대로 땅과 사람을 배우는 길을 걷고 있다.
상주에서 첫 도전을 마친 뒤 그는 현재 의성 안계면 입주를 준비하며 새로운 기반을 구상하고 있다. “좋은 술은 땅에서 태어나고 사람에게서 자랍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술의 본질은 결국 원료의 품질과 그 안의 이야기에 있다. 이 대표는 농민사관학교에 입교해 증류주 제조와 농업 생산 구조를 함께 공부하며 발효의 뿌리를 다시 탐구하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팔레트브루어리는 이러한 탐구의 연장선에서 출발했다. 그는 의성 안계면을 중심으로 지역의 젊은 양조인과 농민이 함께 실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유 양조장을 조성하고자 한다. 이곳에서 ‘쌀맥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 위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맥주는 보리를 쓰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는 쌀맥주로 전통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지역 쌀을 더 많이 쓰는 것이 지자체의 바람이기도 하고요.”

팔레트브루어리의 첫 프로젝트 ‘선셋 시트라(Sunset Citra)’는 그 철학을 담은 결과물이다. 로컬 농산물과 글로벌 감각이 결합된 이 술은 국내산 쌀로 빚은 탄산감 있는 저도주로, 열대과일 향의 홉 아로마와 부드러운 질감을 함께 지녔다. 이름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운’을 주제로 지역의 쌀과 청년의 감각을 한 병에 담았다.
한국맥주문화협회에 따르면 국내 맥주 시장은 약 4조 원,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전통주 시장은 약 1,600억 원 규모다. 이 대표는 이 간극을 좁히고 싶다고 말한다. “가장 큰 시장에서 소비되는 주원료가 대부분 외국산이라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 농산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팔레트브루어리의 실험은 단순한 양조 기술의 혁신이 아니다. 지역 농산물의 가치와 청년의 창의성이 만나 산업이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탱크 속에서 익어갈 술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지역 자원의 새로운 언어이며 로컬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지역의 미래는 도전하는 청년을 응원하는 생태계에서 자란다
이승철 대표의 여정은 변화를 향한 확장의 기록이다. 상주에서의 첫 실험을 마친 그는 이제 경북 전역을 무대로 더 깊은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팔레트브루어리를 통해 지역의 원료와 사람, 문화를 잇는 새로운 실험을 지속하며 술을 매개로 농업과 일자리, 산업을 동시에 재구성하고 있다.
현재 팔레트브루어리에는 세 명의 청년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일터를 단순한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배움터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일과 학습이 공존하는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술을 중심으로 기술과 창의, 지역경제가 교차하는 새로운 일터 모델을 제시하는 셈이다. “술을 빚는 일은 결국 사람을 빚는 일입니다. 함께 만드는 일터를 만들고 싶어요.” 이승철 대표가 자주 하는 이 말에는 술의 본질을 넘어 사람 중심의 철학이 녹아 있다.
이 대표는 지역이 청년의 실험을 품을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그 성공이 또 다른 청년의 도전을 낳는 구조가 지역의 경쟁력을 키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주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이제 그는 의성에서 농업인으로 성장하며 양조와 지역 자원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 확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태계를 더 넓히는 과정이다.
진짜 생태계는 청년의 도전을 평가하는 데서 자라지 않는다. 그 도전을 지켜보고 응원하며 다시 연결해 주는 문화 속에서 자란다. 이승철 대표가 상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성에서 이어가고 있는 시도는 바로 그런 생태계를 향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의 동네에서 엑시트(Exit) 한 청년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는 지역의 가능성을 증명한 사람일 것이다. 이제는 지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청년을 존중하고 리스펙(Respect)할 때다. 청년의 실험을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지역의 미래는 비로소 단단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