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혈족 중심의 공동체가 삶의 중심이었다. 생산과 소비, 돌봄과 교육이 모두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으며, 삼대가 함께 생활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효를 실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규범이었다. 어르신의 경험과 지혜가 존중받고 세대 간 소통이 활발했던 시절, 경로효친은 사회적 유대의 근본이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진행된 경제성장과 도시화는 가족 구조를 해체시켰고, 물질 중심의 가치관 속에서 경로효친사상은 점차 사회적 가치에서 멀어졌다.
한편 초고속 경제성장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져 국민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났으며,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평균수명은 83세에 이르지만 건강수명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이는 노인빈곤, 고독사, 돌봄 부담, 노인학대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수는 축복이지만 질병과 노화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료비와 돌봄, 학대의 부담이 커지고, 가족관계의 단절과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경로효친 문화는 점점 더 약화되고있다. 결국 노년기의 삶의 질 저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경로효친의 회복은 단순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장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적 과제이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효사상 교육과 경로문화 확산,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를 강화하여 개인적 실천을 넘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또한 경로효친의 실천이 사회 속 관계망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 노인인권 교육, 노인학대예방교육, 공공복지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경로효친의 약화는 노인학대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대가족 중심 사회에서는 가정 내에서 일어난 학대가 은폐되기 쉬웠으나, 2000년대 이후 법과 제도의 정비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었다. 2004년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되었고, 2017년에는 ‘노인학대예방의 날’이 제정되면서 노인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관련 제도와 정책 추진이 본격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다. 대구시의 경우 2015년 320건에서 2024년 1,101건으로 3.4배 이상 늘었으며, 이는 사회적 감시체계 강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인공경 의식의 약화를 반영한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12년이 걸렸으나,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뒤 불과 7년 만인 2024년에 그 단계를 넘어섰다. 이러한 빠른 고령화 속도는 사회적 대응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제는 노인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존경과 공경의 주체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경로효친사상과 효문화는 과거의 전통이 아닌, 현대사회가 지향해야 할 우리사회의 보편적 공동체 가치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결국 경로효친은 인간존중과 공동체 회복을 실현하는 핵심 가치이다. 세대 간 상호 이해와 존중, 배려의 문화가 정착될 때 효사상의 회복과 노인학대 예방, 나아가 건강하고 품격 있는 장수사회 실현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윤리 회복이 아니라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