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가수는 의자에 앉아 노래했다
긴 다리 사이에 의자를 끼우고 노래했다
가끔 한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하고 꼬기도 하면서
능숙하게 의자를 한 손으로 돌리고 만졌다
섹시한 것은 여가수였을까, 의자였을까
관능은 혼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
둘 다였을까
남자 배우는 의자를 향해 뛰어왔다
엉덩이가 닿을 끝에 한 발을 올리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등받이를 발끝으로 밟았다
자연스럽게 의자를 눕혔다
남자는 새처럼 날개를 접고 의자 옆에 섰다
섹시한 것은 남자의 반라였을까, 의자였을까
섹시하다는 것은 둘의 힘이 만나는 것이니
둘 다였을 것이다
오늘은 틀에 박힌 의자, 그곳에 몸을 묻고
충만한 세계를 완성해 봐야겠다
◇성자현= 2004년 ‘시와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해설> “오늘은 틀에 박힌 의자, 그곳에 몸을 묻고/ 충만한 세계를 완성해 봐야겠다”는 자신의 고백을 위해 세상에 이분법적으로 존재하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여가수의 의자와 남자 배우의 의자를 등장시킨 시인의 의도는 상당히 재미가 있다. 섹시한 것은 여가수였을까, 의자였을까?는 알 수 없는 의문. 의자는 거기에 있고 그냥 있는 게 아닌 의자의 주인인 여가수와 무관하지 않게,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는 상상은, 상상을 넘어, 또 다른 직관일 수도 있다. 연기자(배우)인 남자의 의자도 그렇다. 해야 할 연기의 일부가 되어, 거기서 어떤 의미의 존재가 되고 있음을 시인은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시인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데, 아마도 자신은 연기자도 가수도 아니므로 틀에 박힌 의자에서 틀 밖의 충만한 세계를 자신의 틀 안에서 완성하겠다는 것은 아닐지. -박윤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