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형 객원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정부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거세다. 급속한 고령화와 길어진 기대수명, 정년과 연금 수령 시기의 불일치가 현실적인 불안으로 다가오면서, 장년층은 “은퇴 후 5년의 소득 공백을 메워야 한다”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청년층은 “기성세대가 일자리를 붙잡으면 우리의 기회는 줄어든다”라고 반발한다. 한마디로 득실상반(得失相反)’이다. 이처럼 정년 연장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쪽에는 득(得)이 다른 쪽에는 실(失)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득과 실이 반드시 제로섬으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먼저 정년 연장 주장의 근거는 분명하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지금, 60세 정년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년 후 가장 기본적인 소득원인 국민연금 수령 시점이 이미 65세로 늦춰지는 상황에서, 60세에 직장을 떠나는 근로자들은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따라 노후 소득이 안정되기 전까지 생계비와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고령층은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이 일정 기간 더 일하며 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청년층은 정년 연장이 곧바로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한 직장을 차지한 기성세대가 5년 더 머무르면, 그만큼 청년의 입직 기회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미 청년 체감실업률이 20%를 웃도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청년 일자리의 잠식을 의미한다”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결국 고령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이 충돌하는 듯 보이는 현실은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기 쉽다. 이에 따라 세대 간의 ‘일자리 전쟁’이라는 불편한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득실상반의 현실로, 한 세대의 득(得)이 곧 다른 세대의 실(失)이 되는 구조 속에서, 사회적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세대 간 경쟁의 프레임으로 비칠 수 있는 정년 연장 문제는 일률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세대 간 ‘서로의 생존’이 아니라 ‘서로의 공존’을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노동 생산성과 인력 구조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제조업이나 건설업처럼 육체노동 비중이 높은 분야와, 전문직·기술직처럼 경험이 중요한 분야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생산성이나 경력의 축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 정년 연장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따라서 업종별, 직종별 특성에 맞는 차등적 정년제나 선택적 연장제를 대안으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년 연장이 단순히 고용 연장에 그쳐서도 안 된다. 임금체계, 직무 전환, 재교육 등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 아래에서 단순히 정년만 늘릴 경우,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 고령층을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려면 임금피크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새로운 직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직무 재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정년 연장 논의는 ‘더 오래 일하되, 합리적으로 일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 또한 단순한 대체 관계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고 신산업 분야가 성장한다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여지는 충분하다. 오히려 숙련된 고령 인력이 산업 전환기의 기술 전수를 맡는다면 세대 간 상생의 고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세대 간 일자리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고, 노동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인구 구조 변화에 맞는 직업훈련, 신산업 진출 지원, 중소기업 인력 매칭 강화 등 실질적 정책 대안 마련에 전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고용제도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형평과 사회적 연대의 문제다. 장년층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는 청년층에게도 미래의 안전망이 된다. 지금의 청년세대도 결국 언젠가 같은 제도의 혜택을 누릴 세대이기 때문에 서로의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미래를 보장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년 연장을 단순한 고용정책으로 보지 말고, 연금 개혁·복지정책·노동시장 개편과 연계한 종합적 사회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령화 시대의 일자리 문제는 한 부처나 한 세대가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득실상반(得失相反)은 세상의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불완전함을 조화시키려는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단지 노동시장의 기술적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대적 화두이다. 이번 논의가 현명한 정책 설계와 사회적 조율을 통해 세대 간의 대립을 넘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가 곧 ‘더 오래 살아볼 만한 사회’라는 인식이 정착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