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있던 현행 실업급여의 구조적 문제점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 드러났다. 실업급여를 받는 실직자가 최저임금으로 한 달을 버틴 노동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는 기형적인 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지난 7년간 무려 127만 7천명이 기존 월급보다 많은 실업급여를 받았고, 이들이 더 받아 간 금액은 1조 2천850억 원에 달하였다. 단순한 통계상의 착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임이 명확해진 셈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로 보장하는 현행 구조 때문이다. 근로소득에는 각종 공제와 유급휴일 계산이 적용되지만, 실업급여는 공제 없이 매일 지급된다. 그 결과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 실수령액이 약 184만 원인 반면, 같은 조건의 실업급여 수급자는 191만 원 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일을 멈추는 순간 월급이 증가한다'라는 역전 현상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정책 실패이자, 제도적 왜곡이다.
이에 따라 반복 수급자의 증가도 심각하다. 최근 5년 동안 세 차례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이 11만 명에 이르고, 특정 업종에서는 현행 실업급여 지급의 허점을 이용해 '6개월 근무, 4개월 실업급여, 2개월 공백'이라는 고정된 패턴이 생활화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 설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유인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부정수급액도 해마다 늘어 올해 벌써 230억 원을 넘어섰지만, 환수율은 60%대에 그치고 있다. 제도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현상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용보험 기금은 이미 적자 폭이 4조 원을 넘어섰고, 만일 경제 충격이 발생하면 8개월 내 고갈될 것이라고 감사원은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실업급여 구조 개편보다 수혜 대상을 넓히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반복 수급 방지, 자격요건 강화, 부정 수급 예방 등 핵심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보호 기조만 확대되는 상황이다.
실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노동시장 복귀를 늦추는 제도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실업급여 제도의 취지는 '일할 능력이 있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을 돕는 것'이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금 고갈을 방치한 채 수혜 범위를 확대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이어갈 것이 아니라, 실업급여 제도 도입의 취지에 걸맞는 구조적 개편 방안을 마련하는 데 전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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