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견숙 대구영선초등학교 교사 교육학 박사
수능이 끝났다.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변화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으면서도, 지난한 논란 가운데에서도 수능 시험은 여전히 건재하다. 700명이 넘는 출제 관계자들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감금되었고, 55만 명의 수험생들과 가족들이 마음을 졸였다. 시각장애인 수험생의 경우 최대 13시간의 긴 시간 동안 꼼짝 없이 문제를 풀어내어야 했고, 1교시가 채 지나지 않아 9.4%의 수험생이 시험을 포기했다. 이날 하루는 비행기도 뜨지 않았고, 수험장을 잘못 찾은 수험생들을 군인과 경찰,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도왔다.

수능 이후에 익숙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수능 이후에 서울의 고 3학생 등교율이 57.3%까지 떨어졌다는 기사는 충격적이다. 1학기까지가 출석 내신이 대입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는데, 어쩌면 수업은 벌써 한참 전부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능 시기를 뒤로 옮기면, 대입에 출석률을 반영하면 더 좋아질 거라는 예측은 서글프다. 아직 기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문제집과 수험서를 몇 트럭을 버리는 모습도 되풀이될 것이고, 시험을 치르고 난 뒤의 학생들이 벌이는 일탈에 대한 염려도 시작될 것이다.

12년 동안의 학업을 집약한 단 한 번의 시험이, 학생이 대학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공부를 해낼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대입을 넘어 미래 사회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을 단답형 시험으로 측정하고, 그 인재를 이 점수로 줄 세울 수 없다는 점에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학업 성취도가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한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고등학생의 삶에서, 혹은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까지 모든 교육과정의 학생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겪는 비정상적인 부분의 근원이 수능에 있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교육부 핵심 정책도 얼마나 우리가 학벌주의, 성적 중심의 사회에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서울대를 10개 만든다는 명명조차 우리 사회의 씁쓸한 실태를 반영한 것은 아닌가 고민하게 만든다. 취지 자체는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려 대학 서열을 완화한다는 것이 목표다. 거점국립대의 지원 예산이 대폭 증액되었고 10년 내에는 세 곳 이상의 대학이 세계 탑 100 대학 안에 들어가야 한다. 정책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줄 세우기의 사회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무한 경쟁의 굴레 속에서 또 서울대 10개 안에서의 대학 서열화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사회 전반의 종합 정책이 아닌, 지방의 대학 지원 정도로만 오인되어 추진된다면 서열화의 고리를 깨지 못할 가망성이 높다. 사실상 지역대학에 대한 공동연구, 예산 지원, 산학 협력 등은 이전에도 있었다. 과연 더 큰 규모의 장기간의 지원만이, 예산의 투입 만이 대학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수준의 10개 대학의 위상을 끌어올리지 못한 패인을 ‘지원을 해 주고도 실패한 지방 대학’ 그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될 것이다.

지난 17일에 열린 국회 토론회 역시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속 가능한 대학 생태계 구축’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수립에 앞서서 전문가의 의견을 논의하는 자리였으며, 교육부는 이를 바탕으로 지방대학 육성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경제, 산업과 더불어 본질적인 서열화 완화 정책의 청사진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시험을 치른 고3 학생들은 거의 열 번에 가까운 교육정책의 변화를 겪어왔다고 한다. 그 변화의 최종 목표는 별로 변한 것 없어 보이지만 수능이었다. 혹자는 이런 정책의 변화가 아이들에게 가혹하다고 말한다. 다분 정치적인 것이 아닌가, 이 변화가 진짜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반문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의 해결책은 없을지언정, 해답은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논의와 숙고하다 보면 최고의 선택이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더 나은 교육적 목표에 가까워지기를 바라야 한다.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