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향(京鄕)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중앙의 경(京)과 지방의 향(鄕)을 구분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경향 의식은 단순한 지리적 구분을 넘어, 오래전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중화사상과 맞닿아 있다.

중화사상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고, 주변 국가나 민족을 오랑케, 즉 향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다. 중심과 주변,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이 시각은 오늘날 수도권과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향 의식은 중앙과 지방의 단순한 차이를 넘어 차별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중앙집권적 관점에서는 인구, 권력, 정보, 의사결정이 집중된 수도권이 중앙이 되고, 지방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반면 특정 중심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지역의 자율성과 고유성을 인정하는 탈중심주적 접근에서 보면 지역이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이면서 동시에 자체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가진 주체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DGIEA(대구경북국제교류협의회)의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08년 3월 출범한 DGIEA는 중앙 정부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외교 전반의 살림이 계획되고 운영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대구·경북 지역 고유의 정신과 문화를 갈고 닦아 지역의 정치·경제·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지역의 전통과 특수성을 충분히 살려 한국적인 얼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취지로 발족됐다.

지난 11월 14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더 친절한 세상을 지향하면서’를 주제로 ‘2025 대구경북국제교류협의회 친선의 밤’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바르토시 비시니에프스키(폴란드), 이반 얀차렉(체코), 알리셔 압두샬로모프(우즈베키스탄), 마렉 레포브스키(슬로바키아), 라민 하사노프(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 대사를 포함한 12개국 25명의 외교사절과 대구경북국제교류협의회 40개국 협회원 및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상호 이해와 배려, 신뢰와 연대의 가치를 나누었다.

신일희 계명대 총장은 환영사에서 “전 세계가 주목한 APEC이 열렸던 장소인 천년고도 경주에서 ‘더 친절한 세상을 지향하면서’라는 주제를 가지게 되어 더욱 뜻이 깊다”며, 이는 APEC 주제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각 국가와의 교류를 위해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문화교류와 의료봉사, 장학금 전달 그리고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 성금 전달 등을 실현하고 있음”을 소개하며, “모든 인류가 자유롭고 행복한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융합하기를 약속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이러한 목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DGIEA는 끊임없는 전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2025 APEC은 경북의 품격과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순간이었으며, 신라 천 년의 역사 위에 첨단기술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문화 APEC’의 상징 도시로 경주가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하며, “APEC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문화·관광의 새로운 성장축을 구축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겠다”고 밝혔다.

홍성주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은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 간 협력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다양한 국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지구온난화, 도시문제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공동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AI 등 미래기술 변화에도 함께 대비해 대구가 글로벌 신성장 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DGIEA는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계명대 총장이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며, 40개국의 민간외교협회, 1천6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예술·문화, 경제·통상, 의료봉사 등 다양한 국제교류 사업을 추진하는 ‘민간외교’ 단체다.

‘민간외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국제교류 노력의 일환으로 16년간 이어져 온 이 행사는 지역의 특성과 국제사회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지역발전과 국제교류가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모델로서 발전하고 있다.

DGIEA 친선의 밤 행사가 개최된 신라 경주를 보는 오늘날 우리는 한반도 동남부의 ‘변방 왕국’으로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 고분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로만 글래스 등 유물을 보면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유리 제품 등이 실크로드를 거쳐 신라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신라가 이미 고대 동서 문명 교류의 흐름과 지역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경주에서 열린 DGIEA 행사는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온 국제교류를 비정부기관이 중앙의 도움 없이 지역 민간 차원에서 계승하여 국익 증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는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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