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경 시인

붉은 다리 아래
깔리 브사르가 흐른다
시간의 흔적을 새긴 나무 기둥
옛날에는 열렸던 다리
배들이 자유롭게 오가던 날들
이제는 굳게 닫힌 채
올라가지 않는 꿈

닭 시장의 분주한 아침
상인들의 웃음과 발걸음
식민의 시간 부서진 꿈
허물어진 다리 위로
뜨거운 태양만이 내려앉는다

붉은 다리는 말한다
강물 따라 바람 따라
더 큰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고.
자유를 향한 길은 닫히지 않는다고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시인, 문화예술기획자. 저서 ‘자카르타 박물관 노트’ ‘서부자바의 오래된 정원’과 공동 저서 11권이 있으며, 제38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 민통의장상 수상, 2023년 제17회 세계 한인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바틱연구자로서 한세예스24 초청전 등 다수의 전시를 했고, 1999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교사 시절 ‘문화탐방반’을 시작으로 ‘한인니문화연구원’을 세워, 25년 넘게 인문·예술·역사를 잇는 현장형 교류를 실천해 오고 있다.

<해설> 사공 경 시인의 따끈한 시집이 나왔다. 시집 ‘불멸의 테이블’은 자카르타의 햇살과 바다, 그리고 오래된 거리 위에서 한 시인이 불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35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시간 속을 걸어온 시인 사공경, 그는 박물관과 파타힐라 광장, 순다끌라빠 항구를 지나며 ‘불멸의 테이블’에 앉아 적도의 이야기를 썼다.“시를 쓰는 일은 역사를 감싸는 한 조각의 천을 짜는 일이며, 신 앞에서 헐벗은 마음으로 그리는 바틱 문양과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도종환 시인은 “그녀의 시는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예술, 인간의 존엄을 향한 깊은 연민의 노래이며, 영혼에 새긴 바틱 문양의 흔적”이라 평했다. ‘불멸의 테이블’은 이방인이면서 모두의 스승이 된 시인의 여정이자,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영혼을 잇는 시적 기도다. 시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이 시집을 읽는 이의 마음에도 불멸의 테이블은 차려지질 않을까.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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