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선도국을 꿈꾸는 나라이다. 세계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창조하는 역동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학문과 지성은 여전히 ‘학문적 식민사관’이라는 오래된 틀에 갇혀 있다. 과거에는 한문고전을 줄줄 암송해야 지식인 대접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유럽 학자의 이름을 먼저 언급해야 “공부 좀 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자신의 이론을 만들지 못하고 늘 외부 권위에 기대는 풍토가 한국 학문의 가장 큰 약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무시하는 유산이다. 인류 최고의 기술 혁신 중 하나인 활자 발명은 한국에서 나왔다. 목활자와 금속활자가 모두 이 땅에서 발명되었음에도 우리는 스스로 그 가치를 높이는 데 서툴렀다. 세계가 인정하기 전에 한국인은 이미 스스로를 평가절하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지성의 가장 큰 병이다.
한국 학문은 유난히 자기비하적 태도가 강하다. 한국인이 만든 사유나 개념은 ‘미완성’이라 치부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이론은 절대적 기준처럼 받아들인다. 따라서 비판은 많지만,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은 드물다. 이렇게 스스로의 토대를 부정하는 태도 속에서는 절대로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없으며, 자기 생각을 믿지 않은 사회가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적은 없다.
◇비판 줄이고 칭찬 늘려야 창조가 시작된다
한국 지식계의 특징은 비판은 빠르고 칭찬은 느리다. 새로운 개념이나 이론이 등장하면 ‘허점 찾기’에 몰두한다. 학문적 논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사유의 성장을 방해하는 문화이다. 학자들끼리도 타인의 연구 성과를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오랫동안 우리는 ‘비판만이 학문적 자세’라는 오해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혁신은 비판에서 나오지 않는다. 혁신은 칭찬에서 나온다. 누군가 새로운 생각을 제시할 때, “여기서 출발해 보자,” “이 관점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라고 인정해 주는 칭찬이 있어야 그 사유가 자란다. 실험적인 생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처음의 미숙함’을 감싸는 문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시작 단계의 아이디어를 잔인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순간 새로운 가능성은 사라진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당시 수많은 실험을 과감히 장려한 이유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전 세계 스타트업이 태어나는 이유도 모두 동일하다.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칭찬 문화’,‘새로운 시도를 응원한다’라는 ‘인정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틀릴까 봐’ 새로운 생각을 내는 것을 꺼리는데 이런 현상은 집단적 칭찬 부족에서 비롯된다.
◇주체적 학문이 서야 선도국이 된다
선도국의 조건은 단순히 경제 규모나 기술력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머리로 만들어내는 이론과 개념이 있어야 진정한 선도국이다. 어느 나라든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나라들은 사상과 철학, 지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그리스는 철학을, 유럽은 계몽사상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생산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K-팝, K-드라마, K-의학, K-웹툰은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하지만 우리의 학문은 여전히 수입형 구조다. 문화는 선도국인데 학문은 추격국이라는 이 결함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기술·문화·지식이 동시에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하나라도 뒤처지면 선도국으로 나설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이다.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니라, 정당한 자기 인정이다. 우리가 만든 사상과 개념을 존중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학자를 격려하는 문화다. 학문적 식민사관을 벗어난다는 것은 외국 이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외국의 이론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지 말고, 우리의 사유를 동등한 출발점으로 인정하자는 의미다.
이제 한국 학문은 주체적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문화·철학·정신을 기반으로 AI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 시작은 사소해 보이는 칭찬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이 생각은 가치가 있다. 계속 발전시켜 보자.” 이 말이 쌓일 때 한국은 비로소 세계를 이끄는 지성국가가 된다.
◇칭찬 없는 학문은 설 땅이 없다
한국이 선도국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이다. 비판에만 익숙한 지성에서 벗어나 우리의 아이디어, 우리의 실험, 우리의 철학을 칭찬하고 성장시키는 문화가 필요하다. 칭찬 없이 선도국 없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실천적 진리다. 우리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순간, 한국은 단순한 추격국을 넘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덕호 지구촌정신문화포럼 대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