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맥’ 이어온 경북조각회, 지역성 깃든 작품 한눈에
정기전 연 2회 불참 시 자격 상실
엄격한 규칙 적용, 공동체 지속
1990년대 초 실험적 작품 수용
신진 조각가 영입에도 적극적
회원 31명·신예 작가 5명 참여
지역 조각계 미래 모색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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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조각회 제50회 초대정기전이 열리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시장 전경. 경북조각회 제공

지금은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지만, 경북조각회가 창립되던 1980년만 해도 대구는 조각의 불모지였다. 당연히 조각에 대한 인식도 현저하게 낮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조각이 시작된 것은 대구·경북 소재의 대학들에서 조각을 미술대학의 교육과목으로 채택하면서부터였다.

지역에서 조각이라는 장르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서울대나 홍익대 출신들이 대구·경북의 미술대학 교수나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면서다.  이들 교육자들은 교육과 조각을 병행하며, 대구·경북에서 조각이 정착하는 것을 주도했다.

경북조각회 회원
경북조각회 회원들이 제50회 초대정기전이 열리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북조각회 제공

경북조각회(회장 고수영)가 올해로 45주년을 맞아 50번째 초대정기전 ‘For New Movement’를 대덕문화전당 제1,2,3전시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조각의 불모지에서 조각이라는 장르를 대구 사회에 각인시키고, 대구미술계에 조각의 지위를 높여온 경북조각회의 지난 45년의 발자취에 대한 감사와 대구 조각계의 미래 발전을 모색하는 자리로 기획됐다.

참여작가는 故 홍성문, 고관호, 고수영, 금중기, 김봉수, 김성우, 김정대, 노창환, 류경민, 문관우, 민태연, 배수관, 변유복, 성민애, 송기석, 승희동, 오동훈, 박남연, 오의석, 유건상, 이기칠, 이상무, 이상수, 이상일, 이수연, 이윤우, 이중호, 이현주, 정식영, 정은기, 최창민 등 회원 31명과 고병천, 송은민, 윤상형, 장지영, 전지인 등 신예작가 5명, 총 36명이다.

경북조각회의 조각가의 안정적인 창작 활동 기반 마련을 목표로 1980년에 창립됐다. 창립 멤버는 故 홍성문, 황태갑, 신근호, 박병영, 남철, 김익수, 송기석, 이동호, 전남길, 신현오, 박세경, 정은기 등 12명이었다.

이들의 지향점은 ‘순수 조각’이었다. 그 내용은 조각이라는 예술이 상업적이나 기능적으로 희석되기보다, 재료가 지닌 물성의 탐색, 형태에 대한 근원적 질문, 공간과의 긴장 관계, 그리고 조각가 개인의 세계관을 구조와 표면 위에 세밀히 구현하는 것이었다.

경북조각회 제50회 초대정기전이 열리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시장 전경. 경북조각회 제공
경북조각회 제50회 초대정기전이 열리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시장 전경. 경북조각회 제공

경북조각회의 활동은 다양하게 전개됐다. 정기전(회원전)을 중심으로 부산 등의 타 지역 단체와의 교류전이나 초대전, 그리고 공공 갤러리·문화회관·지자체 등의 지역 기관의 협력을 통한 순회전시나 기획초대전이 부가됐다. 이런 활동들은 조각의 대중 접근성을 높이고, 신진 조각가를 발굴·육성하는 장이 됐다.

경북조각회가 45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엄격한 규칙에 의한 운영을 꼽을 수 있다. 경북조각회는 격월례회를 운영해 회원 상호 간에 작품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졌다. 격월례회는 서로의 작업 동향을 공유하고, 기술적·예술적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상호보완적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회원 자격의 엄격성 유지도 운영의 묘미였다. 격월례회에 연속 5회 불참하거나 정기전에 연 2회 작품을 출품하지 않는 경우 회원 자격을 상실한다는 규칙을 두었다. 이러한 규정들은 회의 활성화·지속가능성을 확보했으며, 회원 간 책임감 있는 연대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경북조각회 제50회 초대정기전이 열리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시장 전경. 경북조각회 제공
경북조각회 제50회 초대정기전이 열리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시장 전경. 경북조각회 제공

 

경북조각회는 1990년대 초에 전환기를 맞이했다. 청년작가 12명의 신입회원 영입인데, 그것은 곧 스펙트럼의 확장을 의미했다. 이로써 경북조각회는 중견에서 신예까지 포괄하는 구조로 확장됐다. 이들의 영입은 경북조각회의 다양성에 부합했다. 나무나 대리석 같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에서 벗어나 브론즈, 철, 테라코타, 아크릴 등의 새로운 재료를 통한 실험적 작품 수용이 활발해졌다. 신진 조각가 영입은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고수영 경북조각회 회장은 45년을 거치면서 경북조각회가지역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그 첫째가 안정된 전시 운영과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지역 미술 생태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고, 두 번째가 창립 멤버들의 제자들을 신입 회원으로 영입하면서 스승과 제자에 의해 조각 실천의 전승과 조형 노하우의 공유,  조각 공동체의 지속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조각가들의 작품 속에 배어든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의 축적이다. 그들의 조각 속에 지역의 기억, 풍경, 일상성들이 배어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과거의 축적된 역사 아래 새로운 미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의미가 부여됐다. 12명으로 시작한 회원은 현재 30여명으로 늘었고, 그들의 활동력 또한 더욱 왕성해졌다.

고 회장은 “반세기에 걸친 시간 동안 지역 조각의 맥을 잇고,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을 거듭해온 회원들의 열정과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며 회원들의 그간의 노력에 감사를 전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제50회 초대 정기전은 대구·경북 지역 조각가들의 개성과 철학이 담긴 다채로운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전시다. 다양한 재료로 표현된 수준 높은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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