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신경과 부교수
요즘에는 60이면 청춘이요, 77세 희수(喜壽)와 88세 미수(米壽)를 넘어 90세 졸수(卒壽)가 돼야 노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한다.
날로 늘어나는 수명에 모든 인간의 고민거리가 된 질병이 있다면 바로 치매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고 늙는 것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매는 불치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중증의 치매 환자가 젊은 시절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전체 치매의 약 30% 정도는 ‘원인을 제거하면 호전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동안 치료가 어렵다고 여겨졌던 알츠하이머병에 대해서도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치매의 진료에서 신경과 의사는 약 30%의 치매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몇 가지 질문에 낮은 점수가 나오면 치매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기능의 저하가 치료 가능한 질환에 의한 것인지 자세히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년기 우울증은 인지기능 저하의 흔한 원인이지만 환자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고, 뇌전증이나 뇌염은 적절한 시기에 충분한 검사를 하지 않으면 치료의 기회조차 잃게 된다. 또 노년기에는 빈혈이나 비타민 결핍 등의 영양 문제로 인한 인지기능 저하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상태를 초래하는 또다른 의학적 문제가 동반된 경우가 많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이나 전해질 이상과 같은 내과적 문제도 충분히 치료받으면 완치할 수 있는 인지기능 저하의 원인이다.
뇌혈관질환이나 수두증은 시술이나 수술을 고려할 수 있는 질환으로서 이를 치료한다면 치매의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
진정제나 수면제와 같은 약물은 인지기능 저하의 흔한 원인이지만 쉽게 지나치는 문제이며, 특히 약물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먼저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개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에 대해서도 최근에 치료 방법이 개발됐다.
소위 ‘뇌의 독성 침착물 청소부’로서 단일클론항체(면역치료제)인 레카네맙(lecanemab)과 도나네맙(donanemab)이라는 약물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중 레카네맙은 이미 2024년 하반기에 국내에 도입돼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을 뇌에서 제거하거나 축적을 억제하는 것을 주된 기전으로 하며, 특히 경도인지장애나 초기의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효과가 입증됐다.
이제는 치매를 불치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모든 치매 환자에서 자세한 신경과적 평가와 치료 가능한 원인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조기 진단과 원인 확인으로 상당수의 환자들에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으며,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던 알츠하이머병에서도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치매라는 단어 앞에서 너무 쉽게 미래를 포기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