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꽁지깃이 빠졌었나 봐
하늘이 참 파래졌어
네가 흘려둔 구름 한 자락
바람 흔들어 깨우더라니까
춤추고 싶었어
아니, 흔들리고 싶었던,
가슬가슬한 바람이었어
앞가슴 널고 싶었던,
코스모스, 숨 멈추어 버렸던,
엉덩이 살결이 뽀얗더라
내 가을밭이 다 망가졌어
티끌 하나 없었던,
연락해, 어서
◇김병권= 2014년 ‘서정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해설> 시인의 가을을 쓴 노트에는 어떤 기록이 남아 있을까? 사실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가을의 이미지들로 이 시는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어쩌면 뭔가 허전한 마음. 마치 꽁지깃을 빠트려버린 그런 기분이 가을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래서 하늘이 파래졌고 연이어 구름으로 옮겨지는 발상, 다시 구름에서 바람으로 흔들어 깨워지는 자신을 보게 되면서 시인의 가을은 어서 연락하라는 다급함을 드러내고 있다. 특별한 장치를 두지 않으면서도 시를 읽고 나면 상큼한 기분이 드는 것은, 시인의 맑은 영혼이 언어로 비추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춤 - 앞가슴 - 코스모스 - 엉덩이 살결로 이미지가 옮겨가는 재미는 또 어떠한가? 그러나 가을 뒤에 찾아올 겨울 앞에서 시인은 “내 가을밭이 다 망가졌어/티끌 하나 없었던,”의 자신을 발견하고 후회하면서 마을을 들쑤셔 놓고 달아난 “넌”이라는, 가을 같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애타게. -박윤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