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원 달서구청소년문화의집 관장

과거 마을의 중심에는 학교가 있었다. 종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모였고, 그곳은 배움의 장소를 넘어 사람들이 스치고 이야기가 오가는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그 시절의 풍경을 여전히 추억한다. 아이들이 지역의 한가운데서 자라고, 그 중심을 마을이 함께 지켜주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역할을 다시 이어갈 공간은 청소년시설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청소년들을 만나며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청소년의 성장은 국가보다는 지역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큰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청소년의 일상과 변화를 만드는 힘은 결국 지역의 관계망 안에서 생긴다. 청소년은 지역에서 배우고, 지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지역에서 자신의 미래를 탐색한다. 그래서 청소년정책이 지역의 맥락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청소년수련시설은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기에 버겁다. 법에서는 기초단체마다 청소년수련관 1곳, 읍·면·동마다 문화의집 1곳을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최소한의 시설만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인력과 예산은 빠듯하고, 운영은 기본 수준에 머물러 청소년의 일상과 성장을 함께 설계하기가 쉽지 않다. 외부세계의 빠른 변화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삶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에도 청소년수련시설은 이벤트성 공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수련시설이 지역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중앙의 미래지향적 정책과 지역 생활지향적 사업이 만나는 지점이 필요하다. 청소년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지역은 그 삶의 무대다. 중앙이 비전을 제시한다면 지역은 그 비전이 청소년에게 닿도록 생활 속에서 구현해야 하고 이 둘이 연결될 때 정책은 실제 살아 움직인다.

특히 청소년사업이 지방이양으로 전환되면서 지역 중심의 사업이 필수적인 시기가 되었다. 예를 들면 달서구에서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청소년시설로 활용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흐름이다. 사라진 학교 건물이 지역의 기억을 품은 채 다시 살아나는 모습은 공동체의 중심이 재편되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러나 공간만 바뀐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 지도자의 전문성,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그에 따라 청소년시설은 지역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

청소년정책의 본질은 프로그램의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청소년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 삶이 자라는 지역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청소년은 골목길에서 뛰고, 지역의 시설에서 배우고,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결국 지역이 살아 있어야 청소년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청소년이 머무르고 싶은 지역, 도전할 수 있는 지역,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지역이 많아질수록 미래는 더 단단해진다.

이제 지방정부는 청소년시설을 단순한 의무적 설치가 아닌 지역 성장의 중심 거점으로 인식해야 한다. 청소년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은 학교 단체나 집단 프로그램보다 오히려 한 명, 한 명과 깊이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 명의 청소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도자의 전문성과 지역사회의 책임감, 그리고 중앙의 실질적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청소년을 중심에 두고 지역의 변화를 만드는 구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25년의 청소년 현장은 늘 같은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청소년이 자라려면 지역이 살아야 하고, 지역이 살아나려면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청소년정책이 제도에서 머무르지 않고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강창원 달서구청소년문화의집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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