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CNK 내달 27일까지

프랑스 출신으로 갤러리 CNK에서 최근 개인전을 시작한 탕크(본명 탕크레드 페로(Tancred Perrot))의 예술적인 기반은 그래피티(graffiti)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린시절, 부모의 작업 도구로 판타지 피규어를 칠하곤 했고, 청소년기 그래피티 예술가인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를 통해 감정으로 그리는 법을 익혔다.
그의 10대 시절, 프랑스 파리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성행했고, 그런 이미지들은 그에게 시각적인 충격을 안겼다. 강렬한 색채와 시선을 잡아끄는 그래피티 글씨들은 그의 잠자던 예술적인 감각을 일깨웠고,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10대 후반에 이미 그래피티 현장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피티와 문자를 특별하게 도안하는 레터링을 시작한 그는 아티스트 라틀라스(L’Atlas)와 만나 함께 ‘VAO(Visions Abstraites et Optiques)’라는 크루를 결성하고, 거리의 대형 포스터와 캔버스를 오가며 예술의 경계를 확장했다. 당시 그에게 그래피티는 자신을 표현하는 해방구였다.
도시공간 중심 ‘전통 그래피티’
현대에선 다양한 형태로 발전
‘스튜디오 그래피티 회화’ 확장
그래피티는 건물이나 지하철 등의 벽면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예술장르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지하철 내부·외벽, 거리 표면에 자신만의 이름(닉네임)을 도시 곳곳에 남겼다. 오늘날 그래피티는 두 갈래로 확장되고 있다. 불법 또는 합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순수한 스트리트 행위인 도시 공간(Street)에서의 그래피티와 캔버스, 종이, 조각, 설치 형태로 발전하며 현대 미술 시장에서 인정받는 형태인 스튜디오 기반의 그래피티 회화(Studio Graffiti Art)가 그것이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탕크가 “나의 경우 도시 공간에서의 그래피티와 스튜디오 기반의 그래피티 회화라는 두 가지 전통을 모두 섭렵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프레이 캔으로 골목과 건축 구조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도시 공간에서의 그래피티에 심취했고, 이후 작업실로 무대를 옮겨 회화로의 전환을 감행했다.

그의 회화 작업은 칠하기, 멈춤, 건조, 덧칠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작업의 첫 단계는 밑칠이다. 그에게 밑칠은 단순한 바탕 이상의 의미다. 화면 전체의 호흡과 분위기를 미리 결정하는 ‘첫 번째 선언’과도 같다. 밑칠 과정에서 붓이나 롤러 등을 활용해 화면의 기본 톤을 구축하는데, 이 과정에서 색의 농도와 질감이 조절된다. 이후 겹겹이 쌓일 레이어의 ‘깊이’를 밑칠 단계에서 1차로 구축하는 것이다.
스프레이 분사·드리핑·레이어
다채로운 방식의 작업물 선봬
재료 성질 기반 가능성 탐색
다음 단계는 스프레이(Paint spray)를 통한 본격적인 표현 과정이다. 스프레이는 붓과 달리 작가의 팔의 움직임, 거리, 압력, 리듬에 직접 반응하며, 예측 가능한 통제와 예측 불가능한 우연을 동시에 품게 된다. “속도감과 우연적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분사 압력이 강한 스프레이를 선택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프레이 분사 과정에서 압력을 조절하며 안개처럼 고운입자를 흩뿌리기도 하고, 강한 분사로 색층을 날카롭게 중첩시키기는 방식의 작업이 진행된다. 화면과의 거리 차이에 따라 분사된 입자는 얼룩, 그라데이션, 번짐, 가벼운 흔적 등 서로 다른 표정을 남기게 된다. 밑칠이 구축해 둔 색의 지반 위에 스프레이가 새로운 리듬과 구조를 얹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밑칠은 화면의 기초이자 작가의 정서를 담는 첫 레이어이며, 스프레이는 그 위에 얹히는 자유로운 호흡, 즉 작가의 순간적 감각과 신체 리듬이 흔적으로 남는 영역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밑칠과 스프레이 분사 과정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 둘의 관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때로는 스프레이 층을 덮은 후 밀어내거나, 일부는 흐릿하게 남기거나, 어떤 때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밑칠과 스프레이가 협공을 하게 된다. 밑칠과 스프레이 분사 과정에서 우연과 필연이 맞물리며 화면의 밀도는 더욱 견고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가 최종적인 이미지에 방정을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종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이 그에게는 작업 과정이다. 그는 이미지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고 다시 회수하는 자신의 순환적 행위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

탕크의 작업은 몇 가지 시리즈로 진행된다. 문자를 선적인 요소들로 도상화한 후 그것들을 반복해서 표현하는 시리즈, 스프레이를 분사한 후 표면을 긁어내어 시간의 층을 만들고 밑색을 기억하는 시리즈, 흘림과 평면의 중첩으로 ‘바다 풍경’ 또는 수평적 깊이를 암시하는 추상적인 풍경적인 시리즈 등이다.
“캔버스를 눕히거나 세워두고, 스프레이나 아크릴 물감을 흘려보내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색의 흐름을 포착하거나, 스프레이를 분사한 후에 마르기 전에 일부를 긁어내서 밑색이 드러내며 입체감과 시간성의 층이 형성하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래피티를 근간으로 하지만 형식적인 분화를 거듭하고 있는 그다. 특히 한 가지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섞임과 분리, 건조 속도 등의 재료의 성질을 이용해 매번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다양한 작업들을 “각각의 시리즈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시리즈는 그래피티를 기반으로 한 동일한 구조를 따르고 있어요. 그런 가운데 회화적 탐구에 의한 변주를 거듭하고 있죠.”
작품들이 물감과 물감을 다루는 방식으로만 작업한 추상이지만, 그의 화면에서는 바다나 숲 같은 자연의 풍경을 연상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다. 그런 그의 작업은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로 진행된다. 그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즉흥적으로 작업을 진행하지만, 이때 어느 정도의 계획성은 유지한다. 자연을 향한 그의 계획과 물감이 작업 환경과 만나 만들어가는 예측불가능성이 어우러지며 화면 속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연 풍경에서 色 힌트 얻어
최종작품보다 과정 더 중요
이미지 탐색, 소중한 가치”
“저의 색채 감각은 자연, 특히 일출과 일몰의 하늘, 섬의 풍경 등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여행지나 일상에서 경험한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기억하고, 작업과정에서 재해석하죠.”
탕크는 시각 예술뿐 아니라 음악, 특히 전자음악 창작에도 일가견을 보인다. 그는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영상 속에 흐르는 음악은 그의 자작곡이다. 그는 회화 작업에서도 음악적 리듬을 적극 도입한다. “몸의 움직임이나 팔의 운용으로 드러나는 음악적인 리듬감이 화면에 그대로 수용됩니다.”

탕크는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국제적 무대에 적극 참여해왔다. 그의 작업은 유럽, 아시아, 미국 등 다양한 도시에서 전시됐고, 특히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 갤러리 CNK 개인전은 그의 첫 대구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탕크의 다양한 실험을 ‘층별’로 배치, 그의 창작 여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1층에는 거리의 즉흥성과 행위의 흔적이 강조된다. 스프레이 흔적, 자동 글씨, 스프레이 캔의 분사 자국 등은 마치 퍼포먼스의 잔여물처럼 전시장에 남아 있다. 또한 2층 공간에는 물감이 흘러내리는 드리핑 작품들을 소개한다. 색이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며, 중력과 시간의 흔적이 캔버스에 실체로 남는다.
그리고 3층에서는 여러 레이어로 겹친 색의 층과 긁기 효과를 통해 깊이감과 공간감을 탐구한 추상 풍경이 펼쳐진다. 자동 글쓰기 선과 드리핑이 어우러져 시각적 리듬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