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관광 시대 기념품 산업 발전
스위스 아미 나이프·英 유니언 잭
문양·캐릭터로 국가 정체성 구축
신라 역사성 살린 경주 황남빵
가우디 건축물 모티브 기념품
예술 연계 루브르 굿즈도 눈길

모라노 유리 기념품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모라노 유리 기념품은 색감과 투명도, 유리 고유의 질감을 통해 이탈리아의 역사적 정체성과 공예 전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예술적 오브제라 할 수 있다.

여행하는 노마드워크의 일상 속에서, 필자는 더 넓은 세계가 담고 있는 디자인과 브랜딩의 실체를 직접 탐색하고 있다. 여행자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는 그 순간까지, 여행의 경험은 수많은 시각적·감각적 장면들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여행자가 가장 직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기념품이다. 기념품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한 나라의 디자인 역사와 문화적 가치, 지역 정체성이 응축된 작은 문화 패키지다. 그리고 그 패키지를 통해 여행자는 여행의 이미지를 정리하고, 특정 국가와 장소에 대한 인상을 다시 각인한다. 이제 기념품의 디자인은 기능적 목적을 넘어 여행 UX(User Experience)를 총체적으로 결정하는 서비스 경험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패키지 디자인의 의미가 확장된 것은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여행 기념품은 항상 “국가 정체성을 담는 작은 미디어”였고, 시대가 변화할수록 이 미디어는 더 전략적이고 브랜드화된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기념품이 산업적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 말 대량관광 시대 이후였다. 이 시기부터 도시와 국가들은 자국 문화를 상징하는 패턴, 문양, 캐릭터를 ‘브랜드 요소’로 체계화했다. 영국 런던의 기념품이 유니언잭의 레드·블루 팔레트로 통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고, 뉴욕은 1977년 ‘I ♥ NY’ 캠페인을 통해 도시 브랜딩의 전형을 만들었다. 패키지 표면에 “국가 정체성을 시각 기호로 설계한 최초의 브랜딩 전략”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스위스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Swiss Army Knife)’는 군용 도구에서 관광 기념품으로 재정의된 모델이다. 붉은 바탕에 하얀 십자가 로고가 들어간 패키지는 스위스 국기 자체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활용했고, 이 패키징 전략은 현재까지 “스위스 품질”과 “정확성”을 상징하는 국가 브랜딩의 핵심 자산으로 남아 있다.

아시아 지역의 패키지 디자인은 유럽과 또 다른 경로로 발전했다. 일본의 기념품 패키지는 ‘오미야게 문화’에서 시작된다. 선물에는 항상 지역의 절경, 계절의 정취를 담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패키지 디자인은 기능성을 넘어 ‘전통을 시각적으로 다시 말하는 장치’가 되었다. 홋카이도의 시로이코이비토, 도쿄바나나 같은 제품들이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도시의 상징 브랜드가 된 것은 패키지가 가진 스토리텔링 기능 때문이다. 일본 관광청 조사에 따르면, 패키지 디자인 만족도가 높은 기념품의 재구매율은 평균 1.8배, 지역 재방문율은 약 1.3배까지 증가한다는 데이터도 있다. 이는 패키지 경험이 ‘여행 이후의 UX’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사례 역시 흥미롭다. 전주 모주, 제주 감귤 초콜릿, 경주 황남빵은 제품 자체보다 패키지 디자인의 스토리 구조가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황남빵은 경주 고분 벽화를 모티브로 한 금색·적색 패키지를 유지해 도시의 역사성과 제품의 정통성을 연결한 대표 모델이다. 공항 면세점에서 이 패키지는 ‘경주’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키는 즉각적 상징물이 되었고, 실제로 경주 관광재단의 조사에서는 황남빵 패키지를 본 여행자의 57%가 “경주를 떠올리는 핵심 이미지”라고 응답했다.
 

모라노유리기념품2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모라노 유리 기념품은 색감과 투명도, 유리 고유의 질감을 통해 이탈리아의 역사적 정체성과 공예 전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예술적 오브제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디자인 전통은 더 깊은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기념품 패키지는 예술·명품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굿즈 패키지는 고전 회화·조각의 질감을 디지털 텍스처로 구현해 ‘예술 감상 경험’을 기념품 UX로 확장했다. 프랑스 남부의 라벤더 오일 패키지는 프로방스의 풍경과 보랏빛 색채를 핵심 디자인 요소로 삼아 지역 문화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문양, 바티칸의 금박 장식, 베네치아 모라노 유리 패키지는 모두 르네상스 장식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베네치아의 모라노 유리는 특히 패키지 투명창을 통해 유리 자체의 색채와 질감을 강조함으로써 ‘제품을 보는 순간 곧 브랜드 스토리를 읽는 경험’을 완성한다.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을 기반으로 한 바르셀로나 기념품 패키지도 중요한 사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곡선과 타일 패턴을 재구성한 패키지는 도시의 예술 철학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바르셀로나 관광청은 이를 “도시 상징체계의 현대적 계승”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북유럽의 패키지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핀란드의 마리메코(Marimekko) 패키지는 과감한 패턴 대신 절제된 색과 형태를 사용해 ‘핀란드적 감성’을 심플하게 전달한다. 노르웨이 피오르드 지역의 기념품은 과도한 장식을 배제한 채 자연 풍경 사진 또는 추상화된 색조만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덴마크의 하위게(Hygge) 감성이 담긴 양초·티 패키지는 여행자에게 ‘그 나라의 라이프스타일’을 감각적으로 체험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패키지 만족도 높은 기념품은

재구매율·재방문율 상승 기여

여행 끝난 후에도 영향력 발휘

경험 기억화·디지털화 위해선

정보 구조·감각 불러오는 ‘톤’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 갖춰야

현대 여행 산업에서 기념품 패키지가 UX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보다 ‘스토리와 경험을 가져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체코 프라하의 ‘문학적 패키지(Literary Packaging)’ 사례는 흥미롭다. 카렐 차페크·카프카의 문학 요소를 패키지 표지 디자인에 적용해 여행자의 감정적 몰입을 높였다. 프라하관광청은 해당 패키지를 출시한 후 문학 관련 기념품의 매출이 43% 증가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행 상품 패키지는 단순한 포장재가 아니라 여행 경험을 디지털화하고 기억화하는 핵심 인터페이스로 기능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핵심 설계 요소가 있다. 첫째, 패키지의 정보 구조(Information Architecture)가 UX를 결정한다. 사용자가 어떤 역사 요소를 먼저 접하고, 어떤 브랜드 스토리를 이해하게 되는지 패키지 레이아웃으로 설계된다. 둘째, 감정적 톤(Emotional Tone)이다. 색채·재질·타이포그래피가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각을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셋째, 스토리텔링의 깊이(Depth of Story)이다. 단순한 아이콘 나열이 아니라 지역의 전통·문화·철학을 구조적으로 담아낼 때 여행자는 자신이 경험한 여행을 더 의미 있게 기억하게 된다.

여행자가 기념품을 구매하는 순간은 사실 ‘여행 경험의 마지막 챕터’를 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챕터는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정리된다. 여행 상품의 패키지가 여행 UX를 바꾸고 있다는 말은, 패키지가 상품의 가치보다 사용자의 경험을 설계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세계 각국의 기념품 디자인이 역사·문화·서비스 체계를 기반으로 진화해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미 여행지에서 패키지를 펼치는 순간, 그 나라와 다시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패키지 디자인은 단순한 포장을 넘어 여행이라는 거대한 경험을 완성하는 마지막 UX 인터페이스이며, 좋은 패키지는 결국 좋은 여행을 기억하게 한다.

 
류지희<디자이너·작가>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