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현 사회부 기자

실업급여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을 맞았다. 애초에는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국민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고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사회보험 제도였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보면 제도가 원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최근 명의대여와 허위 고용보험 취득으로 실업급여를 부정하게 받은 125명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80명은 사업주와 공모해 육아휴직급여까지 불법 수급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으며 부정수급액은 무려 14억6천여만원에 달한다. 이러한 조직적 부정수급 사례는 지역을 넘어 국가적 재정 누수로 이어지고 있다.

2024년 8월까지 집계된 전국 실업급여 부정수급액만도 230억1천400만원을 넘어섰으나 실제 환수율은 66.3%에 그치고 있다.

부정수급 문제는 단순히 법 위반에 그치지 않는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80% 수준으로 설정되면서 일부 저임금 근로자의 월급보다 많아지는 노동 역전 현상이 나타나 수급자가 적극적인 구직 활동보다 급여 수령을 선택하는 구조적 문제까지 드러났다.

이처럼 실업급여 부정수급 및 남용이 늘어나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아니라 일부에게 ‘편리한 수익원’이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반복 수급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제도의 구조적 허점을 방증하고 있다.

5년간 3회 이상 구직급여를 받은 반복 수급자는 지난해 11만2천823명에 달했으며 이들에게 지급된 급여액은 전체 수급액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3년만에 16.3%나 증가했다.

이같은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편은 시급하다. 최소 가입기간을 늘리고 지급액 수준과 지급기간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며 반복 수급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이직일 이전 5년 동안 2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반복 수급자에 대해 3회차부터 수급액을 최대 50% 감액하고 무급 대기기간을 현행 7일에서 최대 4주로 늘리는 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다.

다만 임금이 지나치게 낮거나 단기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반복 수급 횟수 산정에서 제외하는 등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교한 단서 조항 설계가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적극적 구직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구직 활동에 대한 질적 평가를 강화하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현 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에 경고등이 켜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감사원이 발표한 ‘고용보험기금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실업급여 계정 잔액은 3조5천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 차입금 7조 7천억원을 반영하면 실질적으로 4조 2천억원의 적자 상태를 의미한다.

감사원은 “차입금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경제위기가 갑자기 도래할 경우 8개월 후 완전히 고갈될 수 있다”며 “현재 추세라면 적정 수준의 준비금을 2054년에 가서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대로는 고용보험기금이 다음 번 경제 충격에 전혀 대비할 수 없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실업급여는 그저 돈을 나눠주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공정성 위에 세워진 안전망이다. 원래 취지대로 비자발적 실직자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공모나 부정행위가 통하지 않는 투명한 구조를 만드는 것. 최소 가입 기간 연장, 하한액 조정, 그리고 반복 수급 통제 시스템 구축과 같은 포괄적인 구조 개편만이 실업급여가 취약계층의 버팀목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실업급여가 ‘시럽급여’로 여겨져 근로자들의 정당한 근로의 기회를 빼앗는 유인책이 돼서는 안된다. 제도는 언제나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안전망이어야 하며 달콤함 속에 숨은 부작용까지 철저히 관리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유채현 사회부 기자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