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소비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트 대신 모바일 장보기, 동네 식당 대신 배달앱 주문이 보편화되면서 비대면 쇼핑은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생활 습관으로 굳어졌다. 소비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골목상권이었다. 빈 점포가 늘고 상인들은 하루 매출을 걱정해야 했으며, 경북의 중소도시에서는 이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체감되었다.

그러나 골목상권은 단순히 정서적 공간이 아니다. 지역경제의 공급망을 이루는 생활 서비스업이 모여 있고, 자영업 기반 일자리가 유지되는 곳이며, 주민과 주민, 상인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마지막 기반이다. 경북 주요 상권 곳곳에는 여전히 20년 이상 운영 중인 가게, 가족이 대를 이어 지켜온 점포, 지역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이 흔들리면 지역의 경제와 일상이 함께 흔들린다.

전국적으로는 골목상권 회복의 ‘희망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 개항로다. 오래된 창고·한옥·석조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던 곳에 청년 기획자들이 들어와 오래된 공간을 리브랜딩하자, 이 골목은 단숨에 MZ세대가 줄 서는 관광·소비 명소로 바뀌었다. 대구 남산동의 광덕시장 역시 ‘The 광덕’이라는 브랜드 아래 청년 점포, 전시, 플리마켓이 결합되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사례들은 “골목상권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감각에 맞춘 변신이 부족했던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경북 역시 이제 본격적인 골목상권 부활 전략이 필요하다. 포항 구도심은 해양도시의 정체성과 청년 문화가 결합하면 충분히 활력을 되찾을 수 있고, 안동의 구시가지와 문화지구는 전통과 관광을 연결한 콘텐츠가 강점이다. 경산·구미의 대학가 상권도 청년 창업, 로컬 브랜드 육성, 야간경제 활성화와 결합될 경우 빠르게 회복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지역별 잠재력을 제대로 진단하고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골목별 맞춤형 정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경북형 골목상권 지도와 활력지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상권의 유동인구, 업종 구성, 임대료 추이, 관광객 동선 등을 분석해 침체·정체·성장 단계로 구분하면 우선 투자 지역을 명확히 선정할 수 있다. 단순히 “상권이 죽었다”는 감각적 판단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으로 회복력을 진단해야 한다.

둘째, 도시재생을 단순한 경관 정비 사업에서 벗어나 ‘상권 브랜드 재창조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천 개항로처럼 건물주, 상인, 청년 기획자가 함께 참여하는 골목 브랜드 랩을 운영해 지역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경북 곳곳에는 지역성이 뚜렷한 소재가 많다. 포항은 해양문화, 경주는 역사관광, 안동은 전통과 인문자산, 문경은 체험관광 기반이 강하다. 이런 강점을 상권 브랜딩에 녹이면 ‘찾고 싶은 골목’이 된다.

셋째, 골목상권도 디지털 전환이 필수다. 개별 점포가 배달앱과 온라인 마케팅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지자체 단위로 상권 공동몰, 배달·예약 통합 플랫폼, 공용 물류 거점 등을 지원하여 온라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체험·전시·실험의 공간, 온라인은 고객 유입 통로로 구분하는 이중 구조가 필요하다.

넷째, 골목이 살아난 뒤 찾아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미리 막아야 한다. 대구 김광석 거리 사례처럼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이 내몰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장기임대 상가 도입, 상생협약 체결, 임대료 모니터링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전략은 청년정책·문화정책·관광정책과 통합해 ‘경북 골목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 청년 창업, 로컬 크리에이터, 사회적경제 조직이 골목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경북형 로컬 브랜드를 육성하며, 상권별 특색 있는 야간콘텐츠·축제·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등 입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골목상권의 부활은 단지 상인 몇 명을 지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 도시의 매력도,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함께 키우는 일이다. 팬데믹의 상처를 딛고, 경북의 골목들이 다시 사람 냄새 나고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금이 바로 전략적 투자와 실행의 시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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