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AI 거품, AI 닷컴인가?

◇2000년, 광기의 시대로
AI 산업을 둘러싼 거품 논쟁이 격렬하다. AI 기업의 상당수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최근 OpenAI의 샘 올트먼조차 “AI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라고 경고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2000년 닷컴 버블이 재현되는 것 아닌가?” AI 기업으로 수백억 달러가 쏟아지는데 정작 실적은 미미하다. 인공지능 학습에 결정적인 고품질 데이터는 고갈되고 있다. 고가의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진다. 거품론자들의 경고가 메아리친다.
2000년 닷컴 열풍 때, 실리콘밸리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펫츠닷컴(Pets.com)을 기억하는가. 온라인으로 강아지 사료를 팔겠다며 수억 달러를 쏟아부은 회사. 그러나 변변한 비즈니스 모델은 없었다. 10kg 사료 한 포대를 배송하는 데 드는 물류비용이 판매가격보다 비쌌다. 이 회사는 슈퍼볼 광고에만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귀여운 양말 인형 마스코트를 만들었다. 마스코트는 유명해졌다. 회사는? 9개월 만에 파산했다. 마스코트만 살아남았다. 많은 개인 투자자의 재산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웹벤(Webvan)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식료품 배송의 선구자를 자처하며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았다. 전국에 거대한 자동화 창고를 세우고, 수천 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주문은 예상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텅 빈 창고는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더글로브닷컴(TheGlobe.com)의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IPO 첫날 주가가 606% 폭등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루 만에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하지만 실제 수익 모델은 전혀 없었다. 2001년 주가는 97% 하락했고, 결국 파산했다. 이들이 망한 이유는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였다. 기술은 있었지만, 시장은 없었다. 혁신은 있었지만, 수익은 없었다. ‘인터넷’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투자금을 끌어모았지만, 그 돈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거품이 꺼지면서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다.
역사의 반복?
AI산업에 수백억달러 모이는데
정작 실제 수익 창출 기업은 소수
거품론자들, 닷컴사태 재현 경고
◇역사는 반복한다?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다”, “시장을 선점하고 덩치를 키우면 산다”, “범용인공지능(AGI)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 2025년 AI 이야기가 2000년 인터넷 광풍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25년이나 지났지만, 구호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수익 창출보다 기술 지표에 집착하고, 비즈니스 모델보다 미래 비전을 강조한다. 역사는 반복한다고 했는데, AI 산업이 닷컴 기업의 데자뷔일까?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닷컴의 ‘순환 투자 구조’가 재현된다는 점이다. 당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은 서로에게 광고를 팔며 매출을 부풀렸다. A 기업이 B 기업 웹사이트에 광고를 내고, B 기업은 그 돈으로 C 기업에 광고를 낸다. 외부에서 실제 돈이 들어오지 않는데도 장부상 매출은 늘어난다. 자기 돈으로 자기 빵을 사 먹는 착시였다.
지금 AI 산업은 어떤가? 2024년 6월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흥미로운 패턴을 포착했다. AI 스타트업들이 모델 학습을 위해 클라우드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쓴다. 그 돈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아마존 AWS, 구글 클라우드로 흘러간다. 이 클라우드 기업들은? 다시 엔비디아에서 GPU를 구매하는 데 수백억 달러를 지출한다.
돈이 맴돈다. AI 기업에서 클라우드로, 클라우드에서 칩 회사로, 칩 회사에서 다시 AI 연구로. 마치 폐쇄된 수족관 안에서 물이 순환하듯.
어느 작은 마을을 상상해 보자. 빵집 주인이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정육점 주인은 그 돈으로 빵을 산다. 장부상 매출은 오르지만, 마을 밖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 파산한다. AI 산업도 같은 질문에 직면해 있다. 진짜 최종 소비자의 돈은 얼마나 들어오는가?
우물이 마른다. 고품질 학습 데이터는 늘 솟아나는 샘물이 아니었다. 고인 우물이었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를 떠올려 보자. 처음엔 강바닥에서 금을 주웠다. 그 다음엔 땅을 파야 했다. 나중엔 산을 폭파해야 했다.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결국 대부분의 광부는 파산했다. AI 산업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Epoch AI 연구팀의 2024년 분석에 따르면, 인터넷의 모든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학습했다. 하지만 성능 향상은 둔화하고 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려면? 합성 데이터나 독점 데이터에 의존해야 한다.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또 하나의 그림자가 있다. 하드웨어 의존도다. 닷컴 버블 때 시스코(Cisco)를 기억하는가? ”인터넷 인프라의 필수품“으로 추앙받았다. 2000년 3월, 시가총액 5천550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거품 붕괴 후? 주가는 90% 폭락했다. 거대한 거인이 무너지자, 산업 전체가 흔들렸다.
지금 그 자리에 엔비디아가 서 있다. ‘AI 인프라의 필수품’으로 2024년 6월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다. AI 기업들은 GPU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다. 만약 AI 수요가 꺾이거나 대체 기술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거인의 추락을 목격하게 될 것인가?
이번엔 다르다
표면적 유사성으로 동일시는 위험
닷컴기업들은 신기루 좇았지만
AI기업은 실제로 돈 벌고 있어
◇이번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표면적 유사성만으로 AI를 닷컴 버블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결정적 차이가 있다. 닷컴 기업들은 망할 때까지도 어떻게 돈을 벌지 몰랐다. 펫츠닷컴은 사료를 팔수록 손해였고, 웹밴은 배송할수록 적자였다. 더글로브닷컴은 아예 수익 모델 자체가 없었다. 그들은 “언젠가 수익이 날 것”이라는 신기루를 좇았다.
AI는 지금 돈을 번다. OpenAI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깃허브 코파일럿은 개발자 한 명당 월 10~19달러씩 받는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기꺼이 그 돈을 낸다는 점이다. 맥킨지 2024년 9월 보고서를 보자. 기업의 65%가 한 개 분야 이상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한다. 이것은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영국 대형 로펌 앨런 앤 오버리는 하비(Harvey) AI를 도입한 뒤 계약 업무 시간을 평균 30% 줄였다. 계약 건당 최대 7시간이 사라졌다. 코카콜라는 OpenAI와 손잡고 마케팅에 생성형 AI를 활용한다. 깃허브 개발자들은 코파일럿으로 코드 작성 속도가 55% 빨라졌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기업들
닷컴 버블에도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었다. 아마존과 구글.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한 수익 모델과 실질적 가치 창출이었다. 닷컴을 구원한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기업’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Open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AI 서비스는 실제 매출을 올린다. 이들은 아마존의 후예다, 펫츠닷컴의 후예가 아니다.
그렇다면 엔비디아는? 닷컴의 시스코와 같은 운명일까? 겉으로 보면 닮았다. 시스코는 ”인터넷 인프라의 필수품“이었고, 엔비디아는 ”AI 인프라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닷컴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인터넷 인프라 수요가 급감했다. 시스코는 네트워크 장비라는 단일 시장에 의존했고, 그 시장이 사라지자 함께 무너졌다. 주가는 90% 폭락했다.
엔비디아는 다르다. GPU는 AI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게임,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과학 연구. 그리고 엔비디아는 하드웨어만 파는 회사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까지 구축했다. 애플이 아이폰만 팔지 않고 앱스토어 생태계를 구축해 성장했듯이.
물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억하는가? “다각화된” 금융기업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엔비디아가 흔들리면 AI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시스코의 90% 폭락을 재현할 가능성은 낮다. 엔비디아는 한 우물만 판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은 있다. 그러나 파국은 아닐 것이다.
진짜 위험은 무엇인가
AI산업 전체가 거품은 아니지만
거품 낀 기업은 분명히 존재
진짜와 가짜 구별할 수 있어야
◇진짜 위험은 무엇인가?
AI에는 거품이 전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AI 전체가 거품이냐?“가 아니라 “어떤 AI 기업이 거품이냐?”다. Open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은 이미 수익을 내고 실질적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 “우리도 AI 한다”며 투자금만 끌어모으는 기업도 있다. 진짜 위험은 투자자들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AI’라는 단어만으로 모든 기업에 돈을 쏟아붓는 것. 2000년 ‘닷컴’이 그랬듯이.
닷컴 버블의 진짜 교훈은 “인터넷이 거품이었다”가 아니다. “가치 없는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거품이었다”이다. 아마존과 구글은 그 시기를 견뎌내고 세계를 바꿨다. 당신이 투자하려는 AI 기업은 아마존에 가까운가, 펫츠닷컴에 가까운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가 거품인가?”가 아니다. “나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가?”다. 수익을 올리며 실체가 있는 AI 기업은 AI 산업이 빙하기를 맞아도 살아남아 더 발전할 것이다.
인터넷은 거품이 아니었지만, 거품으로 가득한 인터넷 기업들은 망했다. AI는 거품이 아니지만, 허상만 추구하는 AI 기업들은 사라질 것이다. 역사를 아는 사람은 무너진 돌담 옆에 서지 않는다.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그 답은 각자의 몫이다.
글=김종갑 (인천)재능대학교 유통상품기획과 교수/대신대학교 교양학과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