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나온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배우 유오성의 대사. “난 한 놈만 패!”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 하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한 명만 집중 공격함으로써 상대의 기를 꺾어 이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 곳에 집중함으로써 얻는 성과는 여러 개를 건드리는 것보다 나은데, 그걸 알면서도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퇴직 후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들인 노력에 비하여 좋은 결실을 거두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각처럼 늘지 않으니 또 새로운 방법을 찾느라 오락가락한 것이 더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욕심이 생겨 여러 가지를 동시에 공부하고 있는 것도 썩 좋은 것 같지가 않다. 하나를 여러 번 반복 하지 않고 몇 가지를 함께 하다 보니 이해의 단계에서 기억의 단계로 건너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식은 몸을 해치고 다사(多思)는 정신을 해친다.”는 말이 있다.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끊임없이 온갖 사념이 머릿속을 들락거린다. 낮에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머리를 계속 굴리니 쉬 잠들지 못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순간순간 끼어드는 생각에 대화의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심지어 아주 비싼 돈을 들여 간 공연장에서도 잡생각을 하느라 명연주를 온전히 감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너무 많은 생각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다. 생각이 복잡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도 못한다. 결국 머리를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 좋은 아이디어가 들어 올 틈이 없다.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보고, 호흡에만 집중하며 머릿속을 가다듬는 여유가 필요하다.
누군가 말 했다. “인간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이 말을 날이 갈수록 실감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점점 소원해 져서 오가는 길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관계가 탈색되지 않고 그 빛깔이 오래 유지되는 것은 참 소중하다. 내가 존경하는 분 중, 당신의 지인 한 사람 한사람 정말 소중히 여기며 관계 유지에 세심한 공을 들이는 분이 있다. 그러다보니 그분은 한 달 공식 모임만 스무 개가 넘는다. 좋은 사람들과 늘 어울리느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여러모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하면 이러한 인간관계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고 내가 잘 되기를 늘 빌어주는 스님이 계시다. 그분은 맡은 일이 많아 정말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도 부처님께 올리는 백만 배를 두 번이나 하셨다. 찾아오는 사람은 물리치지 않고 어지간하면 다 만나서 차 대접과 좋은 말씀을 주신다. 여러 중책을 맡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만 그런 가운데 백제 양식의 아름다운 사찰도 지으셨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10대 사찰 중 한곳의 주지도 새로이 맡게 되셨다. 이런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멀리 곁 눈길로 뵈었을 때, 혹 늦게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새벽예불은 절대 빠지는 법이 없다. 늘 주변을 간결하게 정리정돈 하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것이 그분 삶의 모습이다.
나의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도전지에서 “쌓아두고 살던 물건, 인간관계, 바쁘기만 하던 일, 남의 평가 등등 모든 것에서 가벼워지겠다. 그리고 오늘의 아름다운 햇빛을 놓치지 않고, 지금을 알아차리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Simple Life를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남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군더더기는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같은 생각을 하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함께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미국인에게 배울 점 중 하나는 ‘Simple & Clean’한 생활 태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우는 것의 가치를 알아가고 단순한 삶을 실천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