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티켓팅, 5분 전 대기
직행 대신 구간 나누면 예매 성공율 높아
3개 구간 나눠 기관사 3명 운행
안전 운행·가족 건강 소망 빌어

 
 
 

 

강릉까지 바로 가려다…영덕·울진·삼척 찍고 쉬엄쉬엄, 여유가 좋았다

동대구역누리로
새해 첫날 대구~강릉까지 동해선 첫 운행을 준비하고 있는 누리로 1851 열차.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다사다난(多事多難), 2024년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가고 푸른뱀의 해, 을사년이 밝았다.

그동안 연말연시는 사람이 편의상 나눠놓은 것일뿐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별다를게 없다고 생각해왔다. 새해 해돋이 여행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새해 첫날에 개통하는 동해선 첫 열차 소식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포항-삼척을 잇는 동해선 철도가 1일 개통되면서 부전-강릉까지 호랑이의 척추를 따라 기차가 달린다. ‘첫’이라는 접두사는 설렘이다. 첫날, 첫눈, 첫만남, 첫사랑 등.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첫 열차인만큼 표를 구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했다.

동대구에서 출발해 포항, 영덕, 울진을 거쳐 강릉으로 향하는 새해 첫 기차표 예매는 지난달 24일 오전 6시에 시작됐다. 평소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시간인 오전 5시 55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예매창을 열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았는지 금방 매진이라는 빨간 글씨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1월 1일과 2일 주요시간대 상하행선은 매진행렬이 이어졌다. 부전역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는 3일까지도 티켓을 찾기 힘들었다. 물론 티켓 예매의 팁은 있다. 조금 귀찮겠지만 시작역부터 종착역까지 한번에 경로를 선택하지 않고 동대구~포항, 포항~울진, 울진~강릉 이런 식으로 중간 중간 끊어서 예매를 하면 표를 구할 확률이 크다. 물론 자리 이동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함께 예매에 나선 후배 기자는 “부장님, 매진이예요”라는 톡을 보내왔다. “쓸데없이 부지런해서 미안한다. 내가 끊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새해 첫 기차여행이 시작됐다. 이름은 여행이라 붙였지만 실상은 밥먹을 시간도 없이 다녀야 하는 고생길이 훤한 빡빡한 스케줄의 출장이다. 그렇지만 매진된 기차표를 손에 쥐고있으니 새해부터 뭔가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1일 오전 6시 10분경, 아직 해가 뜨기 전 어둠을 뚫고 동대구역 1번 플랫폼으로 6시31분발 강릉행 누리로 기차가 천천히 들어왔다. 부전역에서 오전 5시 33분 출발하는 기차가 동해선 상행 첫 기차지만 대구에서는 이 기차가 첫 차다. “이 차 맞나?” “나는 포항지나서 월포 가는데.” 타는곳 1번이라는 안내에 따라 기다리던 이들은 익숙치 않은 듯 기차를 보고도 선뜻 오르지 못하고 서성였다.

KTX가 아니라 ITX-마음과 누리로가 운행을 하기 때문에 동대구에서 강릉까지는 4시간~4시간30분, 부전에서 강릉까지는 4시간 48분 등 차로 이동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시간단축의 효과는 아직까지는 없다. 동대구에서 강릉까지는 누리로와 ITX마음이 왕복 8회 운행한다. 부전에서 강릉도 마찬가지다. 누리로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29개역을 정차한다. 출발역까지 포함하면 30개역이다. ITX-마음은 16~17개역을 정차한다. 2026년에 시속 260km의 KTX-이음이 투입된다면 시간은 1시간 정도 단축될 예정이다.
 

여정식기관사
새해 첫날 동대구~포항구간 첫 기차를 운행한 여정식 기관사. 김민주기자

동대구에서 강릉으로 가는 누리로는 동대구~포항, 포항~동해, 동해~강릉 이렇게 기관사 3명이 차례로 운행을 한다. 경력 30년이 되어간다는 여정식(53)기관사는 “동해선 첫 열차를 운행하게 돼서 영광스럽고 책임감도 크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노선인만큼 안전하고 편안한 운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가족의 건강과 철도의 안녕이 새해 소망이다”라고 덧붙였다.

포항~동해 구간을 운행한 박성일(54)기관사는 “경상도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동해중부선이 개통이 되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첫 기차 운행인만큼 개인적으로 벅차다”며 “앞으로 이 구간을 자주 운행할 것 같은데 목적지까지 고객분들을 안전하게 모셔드리는 안전운행이 새해 소망”이라고 밝혔다.(안전을 고려해 운행 시작 전, 그리고 운행이 끝난 뒤 인터뷰를 했다)

서는 역이 많은 만큼 바쁘게 움직이는 승무원에게는 말을 붙일 틈도 없었다.

 

 

첫차 설렘 안은 70대 부부
동해선 탈 겸 일출보러 온 가족
칠순 맞은 고교 동창 친구들
“오래 걸려도 정취 있어 좋아”


기차에 오르기 전 만난 70대 여행객 부부는 영해에 내려서 곰치국을 먹고 목은 선생 생가가 있는 괴시리 마을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언제 다시 첫차를 탈 기회가 있겠냐며 일부러 서둘렀다고 설레는 마음을 내비쳤다. 다음에는 강릉까지도 갔다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장사역까지 간다는 이소연(대구 북구·46)씨는 고3, 고1이 되는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일출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일출시간은 못 맞출것 같다며 새해 첫 기차를 타는데 의미를 두겠다고 말했다. 처음 계획은 울진행이었으나 표가 없어 장사역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고 덧붙였다. 평소 일출여행을 따로 가지는 않지만 동해선 개통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나섰다며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해맞이 인파로 인한 도로정체 없이 동해바다를 다녀올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1월 1일 첫 운행하는 동해선 기차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 소망을 빌어본다. 배수경기자
1월 1일 첫 운행하는 동해선 기차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 소망을 빌어본다. 배수경기자

기자 일행은 처음에는 동대구에서 강릉을 갔다가 바로 돌아오는 코스로 예매를 했지만 영덕, 울진에서 내려 잠시 머물다 삼척에서 돌아오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동대구에서 출발해서 몇 개 역을 거친 후 포항역에 도착했다. 그즈음 차창밖으로 해가 떠올랐다. 해돋이나 바다 풍경을 보려면 상행선의 경우는 오른쪽 좌석(C, D)을 선택하는게 좋다. 포항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올랐다. 동해를 달리는 기차인만큼 바다를 끼고 달리는 낭만적인 풍경을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구간이 많지는 않다. 월포역, 고래불역, 울진역 등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 강원도로 넘어가면 정동진역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근덕역, 삼척해변역 등 걸어서 해변으로 갈 수 있는 역도 있다. 동해에서 강릉구간은 기차 옆으로 환상적인 바다풍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해운대 사는 언니네에 왔다가 영덕 친정까지 함께 간다는 김미희(대전)씨는 신해운대에서 포항을 거쳐 영덕으로 간다고 했다. 전철화 공사로 포항~영덕간 기차 운행이 중단돼 그동안은 포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앞으로는 영덕까지 환승없이 한번에 갈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다고 이야기 했다. 기차 안에서 포항에서 강릉으로 가는 친구까지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단다.

울진역포토존
울진역 포토존에서 한 꼬마가 ITX-마음 기차를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후포역에서 기성역을 향해갈 때 오른쪽의 파크골프장에서 운동을 즐기던 이들이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새해 첫 기차를 탄 사람이나 밖에서 바라보는 이나 얼굴에는 행복이 묻어났다.
 

동대구역에서 정동진까지 새해 여행에 나선 친구들.
동대구역에서 정동진까지 새해 여행에 나선 친구들. 이원열 씨 제공. 

 

김홍길, 이근배, 이원열, 윤성수 칠순의 고교동창 친구들은 기차 안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은 동해선 개통을 기념해 동대구역에서 정동진역까지 여행을 계획했다. 모래시계공원을 가고 바닷바람을 쐬고 친구가 쏘는 저녁을 먹을 계획이란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도 기차여행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직접 운전하는 것도 좋지만 기차여행만의 정취가 있다”며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표정을 보는 것도 좋고 강원도 쪽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달라지는 말투도 재미있다”고 했다.

첫날인만큼 중간중간 표없이 승차해서 승무원이 지나가면 현장에서 바로 구매를 하는 이들도 간혹 보였다.

 

강릉까지 한번에 가도 좋지만
중간에 내려 느긋히 즐겨보길
바다 보이는 구간 적어 아쉬워
통행 시간단축 효과는 '글쎄'

오늘의 여정.
동대구~영덕 (누리로 1851) 오전 6시31분~오전 8시22분
영덕~울진(누리로 1853) 오후 2시06분~오후 3시3분
울진~삼척(ITX마음 1241) 오후 5시43분~오후 6시18분
삼척~동대구 (ITX마음 1260) 오후 8시52분~오후 11시 52분

누리로나 ITX-마음의 매력은 중간중간 정차역이 많다는 것이다. 한번에 강릉까지 달리는 것도 좋지만 느긋하게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영덕해맞이공원 창포말등대. 배수경기자
영덕해맞이공원 창포말등대. 배수경기자

 

영덕역에 내려서 역근처 식당에서 물곰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해는 이미 떠올랐지만 영덕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동해바다를 보고 새해 다짐을 마음 속에 새겼다.

BTS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지. 저 멀리 경정항의 빨간 등대가 보이고 경정3리에는 빛바랜 표지판만 남아있다. 배수경 기자
BTS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지. 저 멀리 경정항의 빨간 등대가 보이고 경정3리에는 빛바랜 표지판만 남아있다. 배수경 기자

 

BTS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지인 경정3리도 잠시 들러봤지만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빛바랜 표지판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다음 기차까지 꽤 시간이 남아 영덕역에서 관광명소를 돌아볼 수 있는 버스여행코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울진역
동해선 개통을 알리는 현수막.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울진역에서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운 해안을 찾아나섰다. 죽변항으로 가도 좋고 망양정에 오르거나 왕피천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후포역에서는 등기산스카이워크를, 영해역에서는 벌영리 메타세쿼이어길을, 매화역에 내리면 이현세만화거리, 죽변역에서는 죽변해안스카이레일 등을 다녀올 수 있다. 하루였지만 기차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 다음 여행을 마음 속으로 계획해 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시간은 많고 주머니가 얇을 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느긋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동해선 열차에 올라보자.

차로 이동하는 것과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걸리지만 느리게 달리는 기차여행은 차로 다닐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성으로 가득하다. 그동안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있던 일상에서 느릿느릿함에 몸을 맡겨보니 하루의 여정이지만 마음에 쉼표를 찍은 느낌이다.

새해 첫날 동해선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목적지에 갔다가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바로 내려오는 코스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들은 새해 첫 소망으로 대부분 ‘가족의 건강’을 꼽았다. 모든 이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길 소망해보며 다시 동대구로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려본다.

배수경·김민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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